풍경 그리고 사람들

지난 여름 풍경들 2

정진숙 2016. 12. 28. 23:19

 

 

 

 

 

 

 

 

 

 

삼청동 길로 들어서기 전에 잠시 길 안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동십자각을 보자.

일제가 도로를 넓힌다며 1924년에 이렇게 동십자각을 도로 안에 있게 만들었다.

이 건물은 본래 경복궁 담장의 동남쪽 모서리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의 경복궁 담장은 원래의 자리에서 경복궁 안쪽으로 한참 들어서 있는 것이다.

서남쪽에는 서십자각이 있었는데 일제는 1923년 9월에 전찻길을 놓아야 한다며 서십자각을 파괴해 없애 버렸다.

물론 이런 파괴와 훼손은 조선의 몰락을 보여주기 위한 문화침략의 일환이었다.

두 십자각은 담장과 길을 굽어보며 감시하는 궐대였다.

‘궁궐’이라는 말에서 ‘궁’은 왕의 거처를 뜻하고, ‘궐’은 바로 이 ‘궐대’를 뜻한다.

동십자각에 비추어 보면 본래의 삼청동 길은 지금보다 훨씬 좁았다.

그리고 지금의 삼청동 길에서 보도와 그 옆 차도는 개울(삼청동천-중학천)이었다.

원래 이 길은 높은 경복궁 담장과 삼청동천이 어우러진 훨씬 더 운치 있는 길이었다.<홍성태 서울 만보기 중>

 

경복궁을 중심으로 삶의 반경이 정해진 조선을 지나 현재로 이어진 서울의 이야기 속으로 걸어갑니다.

오랜 역사가 서린 수도 서울에 대해서 우린 잘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는지요.

서울의 골목길은 옛 서울의 기본 형태를 짐작할 수 있게 해 주는 유적의 의미를 갖는다고 했습니다.

골목길은 단순히 길이 아니라 우리 삶의 역사를 담고 있는 길입니다.

서울 도심의 골목길로 들어가는 것은 서울의 가장 오랜 역사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어제와 오늘을 연결해주는 골목길

그 골목길을 걷겠습니다.

 

북촌 골목길 걷던 날,

세월이 빗겨간 듯한 익선동 골목을 시작으로

종로의 어제로 걸어간 하루였습니다.

길 위에서 많은 이야기들을 만났던 날

장마 중에 맞은 맑은 하늘이 고마웠던 날이었지요.

운현궁 뜨락에 앉아 들었던 역사이야기

깊은샘 대장님의 열정적인 강의 유익했습니다.

 

헌법재판소의 늠름한 백송

수백 년을 버텨낸 그 세월 앞에 비장함마저 느껴지더군요.

나라에 환란이 있을 땐 나무 빛이 어두워지고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땐 나무 빛이 하얗게 빛난다 하니

참 신기한 소나무입니다.

그날 하얗게 빛나던 백송을 보았으니 좋은 일이 있지 않을까요.

 

재동에서 화동 언덕으로 오르는 길

한옥 담장 위에 휘늘어진 능소화도 참 예뻤습니다.

오랜만에 찾은 정독도서관 등나무 그늘아래서

마로니님이 정성으로 준비하신 음식 맛나게 잘 먹었습니다.

 

북촌 길엔 한복 입은 외국인들이 많더군요.

우리 것에 대한 우리의 무관심이 조금 부끄러웠습니다.

가을엔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북촌 길을 걸어볼까 합니다.

중앙고등학교 교문 옆 푸르른 은행나무

수백 년 그 고목은 북촌이 변해가던 날들을 기억할까요?

지나간 어제들이 골목골목에 아직 남아

아련하게 추억을 돌아보게 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또 다른 세대가 그 길을 걸으며

옛날을 상상하겠지요.

 

감고당길을 걸어내려 와 조계사에 도착하니

고운 연꽃들이 경내에 가득했습니다.

제가 다니던 여학교가 조계사에서 길 하나사이로 마주하고 있었습니다.

강남으로 옮겨간 모교의 흔적을 이곳에서 돌아보곤 합니다.

그때의 고즈넉한 멋은 사라지고 없지만

도심에서 잠시 마음 내려놓을 공간이 되어줍니다.

 

조계사 앞 아지오에서 시작한 긴 뒷풀이

종로 노포집 경북집을 거쳐 을지로의 만선호프까지

두루두루 시내 곳곳을 누빈 유쾌한 날이었습니다.

긴 시간 함께해주신 산우들께 감사드립니다.

하루종일 서울 길의 역사 안내해주신 대장님께

거듭 고마움 전합니다.

다음 길에서 반가이 또 뵙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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