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해파랑길, 화진포
동해 7번국도 해파랑길 50구간 중 49구간을 걷는다.
마흔 네 명의 인원이 함께 길을 걸으며
그 길에서 의미를 찾아 곱씹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럴 땐 재미와 즐거움이 우선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웃고 떠들고 서로에게 환호하며 하루를 즐겁게 소비하는 것
오늘을 맘껏 누리는 것!
10월 1일 국군의 날
화진포 가는 길은 국군이 38선을 뚫고 북으로 전진하는 길만큼 멀었다.
아까대장의 해설에 의하면 국군의 날 제정 유래는
6.25 당시 낙동강까지 후퇴한 대한민국 국군이
10월 1일 38선을 돌파 북진한 날을 기념해 정해졌다고 한다.
3사단 23연대 백골부대가 그 주인공이다.
38선 휴게소가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는 걸 바라보며
1979년 10월 1일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우리 모교는 크고 작은 행사에 여러 번 동원되었다.
그해도 여의도 광장 행사에 합창단으로 차출되어 거의 한 달을 군가연습을 했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원한이야 피에 맺힌 적군을 무찌르고서
꽃잎처럼 떨어져 간 전우야 잘 자라
우거진 수풀을 헤치면서 앞으로 앞으로
추풍령아 잘 있거라 우리는 돌진한다
달빛 어린 고개에서 마지막 나누어 먹던
화랑 담배 연기 속에 사라진 전우야
무지막지한 가사의 군가를 부르며 나도 모르게 울컥했던 생각이 난다.
셀 수 없이 도열한 군 장비와 탱크, 군용트럭
여의도 광장을 가득 메운 육, 해, 공군 군인들
내 평생 본 것보다 더 많은 군인을 그때 보았던 것 같다.
파란 하늘 위엔 대형 태극기가 휘날리고
장엄한 열병식이 시작되기 바로 직전이었다.
잠시 후면 박정희대통령을 태운 리무진이 사열대 앞을 지나갈 것이다.
긴장되고 두근거리던 순간
갑자기 애드벌룬으로 띄운 태극기가 두 갈래로 쫙 갈라졌다.
믿기 힘든 광경에 모두가 일제히 와하는 탄식을 짧게 터뜨렸다.
예상치 못한 상황은 서둘러 수습되고
잠시 후 새 태극기를 띄운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태극기가 반으로 갈라지다니
왠지 불길한 느낌은 오래도록 꺼림칙하게 남았다.
공교롭게도 그해 같은 달
세상을 뒤바꾼 대통령 저격사건이 있었다.
권력의 역사는 참 무상하다.
누구도 짐작하지 못한 길로 세상은 또 다른 권력자의 손에 넘어가고
또 누군가에게로 쉼 없이 옮겨간다.
그렇게 역사는 흐르고 흘러
어제에서 오늘로, 오늘에서 내일로 향해가고 있다.
떠난 지 여섯 시간 만에 힘겹게 도착한 동해바다
거진항에서 시작해 화진포까지 해파랑 길을 걷는다.
세상이 어떻게 굴러가든
우린 이 바닷가에서 즐겁고 행복하다.
좋은 이들과 아름다운 길을 걸으며
자연이 선사한 이 좋은 풍경을 만끽한다.
지금 이 순간 여기에 충실하고
그리고 또 내 몫의 내일을 열심히 살아가면 된다.
'내가 사랑하는 한국의 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난 가을 풍경들 3 (0) | 2017.01.23 |
---|---|
지난 가을 풍경들 2 (0) | 2017.01.23 |
섬진강 탐매와 구례 산수유 기행 (0) | 2016.12.31 |
지리산 대성골, 서산대사길 (0) | 2016.12.30 |
지리산 바래봉 신선둘레길 (0) | 2016.12.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