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아쉬운 기억 하나

정진숙 2012. 11. 11. 09:41

 

휴일 오후다.

남편은 모임이 있다며 외출했다. 아들과 둘이서 간단히 먹으려고 늦은 점심을 챙긴다. 남은 찬밥을 렌지에 데우고 라면에 계란 두 개를 넣고 끓였다. 냄비 채 상에 얹어놓으며 엄마는 계란 푼 라면만 보면 떠오르는 일이 있다며 옛날이야기를 꺼낸다.

고교 진학제도가 평준화로 바뀐 후 4년차로 접어들던 해에 나는 서울 중심가에 있는 명문 여학교에 배정 받았다. 부모님은 운이 좋았다며 기뻐하셨지만 명문 그게 뭐 대단한 건가 싶어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정작 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는 쟁쟁한 선배들의 후광에 주눅 들기 시작하였다. 선생님들은 이전 입시세대의 학생과 평준화세대의 우리를 번번이 비교하셨다. 물론 자극이 되라는 좋은 의도를 담으셨을 것이다. 그럼에도 대놓고 하는 무시로만 느껴져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달리 항변도 못했던 우울한 학창시절, 게다가 내로라하는 고관대작의 영애들이 한 반에 두엇은 있어 은연 중 기가 죽어지냈다.

성남에서 종로까지 버스로 통학하던 나는 강남의 신사동 사거리에서 환승했다. 자연스레 논현동이 집인 짝꿍과 통학을 같이 하게 되었다. 1학년 중간고사를 치를 무렵이다. 짝꿍이 집에서 시험공부를 같이 하자기에 따라간 적이 있다. 손을 잡고 도착한 논현동 언덕 위 친구의 집은 놀라웠다. 성곽처럼 높고 긴 담장. 돌계단을 올라가 넓은 정원을 지나고 건물 한 채를 지나 서 있는 으리으리한 3층집. 그야말로 그림에서나 봄직한 집이었다. 애써 태연한 척 굴었지만 그 아이를 대하기가 갑자기 불편해졌다. 너희 아버지 뭐하시는 분이야 하고 물었더니 아무렇지 않게 국회의원이셔 한다. 그것도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유신 정부의 공화당 국회의원이란다. 그 날 내 머릿속으로 시험범위의 공부가 제대로 들어간 것 같지는 않다.

그 후로 몇 번을 더 친구의 집에 마지못해 이끌려갔다. 하지만 괜한 자존심에 그 애와 가까워지기가 꺼려졌다. 아침이면 버스를 타기 위해 줄을 선 내게로 와서 우리 차타라며 손을 잡아당기면 그게 어찌나 멋쩍고 싫었던지. 하는 수없이 두어 차례 차를 얻어 타고는 다음부터 난 그냥 버스 타고 갈 거라며 거절하고 말았다.

한 번은 그 애가 집에서 일하는 아주머니에게 라면 좀 끓여 달라 말한 적이 있다. 잠시 후 큼지막한 그릇에 담겨온 계란을 듬뿍 푼 라면을 보고 나는 움츠러들었다. 지금은 국민간식이 되어 흔해진 라면이지만 당시만 해도 특별한 날에나 먹는 짜장면처럼 내겐 대접 받는 음식이었다. 정말 먹고 살기 힘들던 때라 라면은커녕 학교 갈 차비조차 빌려 다니던 궁핍한 처지의 나에 비해 호사스럽기만 한 친구의 삶이 부러운 한편 부담스러웠다. 그리고 자꾸만 작아지는 나의 모습에 더 큰 자괴감이 들었다.

2학년으로 진급하면서 반이 달라져 친구와는 자연히 멀어지게 되었다. 복도에서 간혹 마주쳐도 데면데면 지나쳤다. 졸업하고도 우연히 한번을 마주치고 더는 만나지 못했다. 아마 다시 만난다 해도 그때의 마음으로 날 대하진 못할 것이다. 그래도 여태껏 친구가 고마운 건 아무런 내색 없이 늘 한결 같이 대해주었던 그 순수함 때문이리라. 고운 손으로 내 손을 끌던 따뜻한 마음이 이제야 느껴지다니외교관 부인이 꿈이라던 그 애가 어떻게 변했을지 가끔 궁금하.

아들에게 계란이 듬뿍 든 라면에 얽힌 나의 씁쓸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나자 이런 말을 한다.

내 친구 중에 엄마처럼 비슷한 경험을 가진 아이가 있는데요, 그 애는 반대였대요. 오히려 친해지려고 애썼더니 친구도 좋아하고 잘해주더래요.”

갑자기 멍해지는 느낌이다. 바로 그거였다. 모든 상황에는 두 가지 선택의 길이 있다. 나는 그 둘 중 어둡고 칙칙한 쪽을 택한 것이다. 툭 털고 환한 길을 유쾌하게 걸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지금에라도 깨달았으니 다행이다. 더구나 아들이 어미의 어두운 마음의 이력을 무한 긍정으로 헤아려주니 이 아니 기쁜가.

입학한 얼마 후 어느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여기 앉은 여러분은 너무나 다른 환경에서 살았고 너무나 다른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순간에, 서로 다른 친구들과 한 공간에 앉아 함께 공부 하고 있다는 사실을 소중하게 여기고 감사해야 한다.”

너무 철이 없어서 그런지 그 감사함을 모르고 지나왔다. 싫은 상황은 피하려고만 했지 주어진 그대로를 받아들일 줄 몰랐던 것 같다. 친구들의 다양한 삶을 만난 것에 감사하고 서로의 다른 가능성들을 헤아렸어야 했다. 우리의 있는 그대로를 긍정하고 조금 더 사랑했더라면 자신감 넘치는 학창시절을 보내지 않았을까. 가지 못한 길이 아름다워 보이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