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은혼식
하늘에서 내려다 본 서울의 풍경은 흐릿하고 어두웠다. 3월의 희뿌연 대기 탓이었을까. 제주를 출발한 비행기가 김포공항에 도착할 즈음 나의 마음 또한 무거웠다. 갑자기 엄습하던 그날의 기분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막연하기만 하던 무언가가 내 앞으로 불쑥 다가서는 듯 당혹감이 느껴졌던 것 같다. 알 수 없는 중압감과 모든 불안의 이유는 새로운 생활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편치 않았던 2박 3일의 신혼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던 길에 스친 첫 생각이었다.
6년이라는 긴 연애 기간에도 결정을 못 내리던 우리의 결혼문제는 시아버님의 갑작스런 발병으로 급하게 진전되었다. 양가 모두 어려운 형편이라 선뜻 혼사를 정하지 못하고 미루던 차였다. 와병 중이신 시아버님께서 막내인 외아들이 장가가는 걸 꼭 봐야 편안하시겠다는 말씀을 부모님께 전해 오셨다. 1월에 상견례를 하고 3월에 급히 날을 잡았다. 이미 결혼적령기를 지난 나이였음에도 별다른 준비도 못한 채 엉겁결에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그리고는 이십 여일이 지났다. 벚꽃 만발한 4월 초의 이른 새벽, 시아버님은 운명하시고 말았다. 그 아침은 유난히도 화창했다. 연분홍 꽃잎이 난분분 흩날리던 이문동 신혼집의 골목길 생각이 난다. 너무도 아름다운 봄날에 왜 그리 서둘러 가셨는지. 감당하기 버거운 슬픔을 안간힘으로 버텨내던 그해 봄의 느낌이 선연하다. 어찌 보면 아버님의 위급한 병환 덕분에 우리는 부부의 연을 맺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사정 모르는 이들이야 새 사람 들이고 치른 부친상이라 흉을 할 수도 있으련만 집안 어른들은 혼사라도 치러 편히 떠나실 수 있게 효도한 거라 위로해주셨다.
한 해에 치른 두 번의 큰일은 살아감의 고단함을 일찌감치 깨우치게 만들었다. 좋은 일 궂은 일이 오고가는 게 인생살이란 걸 젊은 나이에 절로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돌아보니 참 무던하게 잘 살아 왔다는 생각이 든다. 가진 것 부족하게 시작했어도 남부러워 하지 않고 자족하며 살았다. 가끔은 괜한 욕심에 마음 아픈 적도 있었지만 살아가며 지닐 수 있는 만큼의 과하지 않은 욕심이었다. 남들과 비교하며 괴롭기보다 나는 나인 것에 만족한 순간이 더 많았기에 그다지 불행하지 않았다. 내게 없는 것에 불평하기보다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함이 행복의 비결임을 재빨리 터득하며 살았던 것 같다.
시간은 언제 이만큼 흘렀을까. 기쁜 일 슬픈 일 겪으며 사는 사이 25년이 훌쩍 지나갔다. 이번 결혼기념일은 여건이 허락한다면 은혼식이라도 올리며 자축하고 싶다. 하지만 형식을 대신해 스물다섯 살이 되는 아들과 함께 조촐하게 가족여행을 가기로 맘먹는다. 왠지 뿌듯하고 우리부부가 대견스럽다. 삶의 크고 작은 애환들을 무난하게 타고 넘으며 오늘에 이른 것이 그저 감사하다. 열 쌍 중 반은 헤어진다는 요즘의 이혼풍속도에 견주어 지금껏 무탈하게 가정을 이루고 살아감이 얼마나 고마운지. 간혹 남편이 야속하거나 미울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하나뿐인 아들을 낳던 날 노심초사 걱정하던 남편 모습을 떠올리곤 한다. 아홉이 부족해도 하나가 흡족하면 열이 모두 만족스럽다는 말은 헛말이 아니다. 밤을 꼬박 새워 곁을 지키고 염려해 주던 그때의 고마운 기억은 힘든 고비를 타고 넘게 만드는 사랑의 묘약이 되어 주었다.
‘두 부부는 서로 덕 보려 하지 말고 서로에게 도움이 되려고 애써야 합니다. 그러면 부부는 평생 싸울 일이 없습니다.’ 언젠가 읽은 법륜스님의 주례사 중 한 구절을 새겨본다. 부부 사이라도 손해 안 보고 하나라도 덕 보려 아등바등하면 다툼이 일수밖에 없잖은가. 서로 덕 보려 하기보다 서로에게 하나라도 더 도움이 되려고 애쓰며 살다보면 원만한 부부로 사는 길이 그리 먼 곳에 있는 것 같진 않다. 내가 원하는 걸 몰라준다는 서운함보다 상대가 바라는 걸 헤아릴 줄 아는 지혜, 허물은 눈감아 주고 부족함은 채워 주려는 아량을 갖기까지는 오랜 세월 동안의 노력이 필요하리라.
출발이야 어찌 되었든 결국은 내가 택해서 시작된 결혼생활이다. 인생사 맑은 날 흐린 날 중에 즐거운 순간을 더 많이 기억하고 산다면 내 인생은 밝고 즐거울 것이고, 괴로운 순간을 더 많이 기억하고 산다면 내 인생은 어둡고 괴로울 게 빤한 일이다. 어떤 색깔의 삶을 사느냐는 나의 맘먹기에 달렸다. 너 때문에 이래 사니 저래 사니 원망하며 상대방만을 탓할 일은 결코 아니다. 바로 내가 책임져야 할 내 몫이다. 그저 이 사람을 평생의 동반자로 정한 나의 선택을 존중하고, 선택한 내 몫의 삶을 받아들여, 있는 그대로를 긍정하며 사는 것만이 최선이라 여기고 살았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정성을 다하노라면 편안한 가정은 저절로 일구어 지는 거라 믿으면서.
까마득히 먼 시간 같더니 벌써 은혼식이다. 앞으로의 25년은 여태껏 해온 것처럼 또 그렇게 노력하며 살리라. 나의 선택에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스스로 만족하고 살아가리라. 그리고 금혼식이 되는 그날에, 나는 잘 살았다 기쁜 마음으로 말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