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속엔 무언가 벅찬 것들로 가득했다. 서로 앞 다투며 웅성거리는 감정들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극장을 나서고도 쿠바의 하바나 거리와 스페인어의 리드미컬한 울림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질 않는다. 한 번뿐인 인생인데 이들처럼 멋지게 살아야하지 않을까. 낭만과 열정, 음악으로 충만한 삶이라면 그 삶의 모습이 어떠하든 행복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은 밴드멤버들의 1998년 4월 암스테르담 공연실황을 보여주며 첫 장면을 시작한다. 빔 벤더스 감독의 다큐영화인 이 작품은 실제인물들의 인터뷰와 공연장면을 그대로 담아 번갈아 가며 보여주고 있다. 영화적인 스토리를 배제한 인물 각각의 삶에 초점을 맞춘 기록물에 더 가까운 음악영화이다. 미국의 전설적인 기타리스트이며 프로듀서인 라이 코더의 기획으로 만들어진 이 불후의 명작은 2001년 첫 개봉 후 14년 만에 재개봉된 영화이다.
젊은 날 친구가 선물한 테이프에서 아프리카의 감각적인 선율을 처음 만났던 라이 쿠더는 그때의 감동을 떠올리며 아티스트들을 찾아 하바나에 온 적이 있었다. 그 당시엔 그 일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낼지 짐작하지 못했다. 세월이 많이 흐른 후 친구의 권유로 아프리카음악의 음반작업을 위해 다시 하바나를 찾는다. 하지만 예정되었던 연주자들의 변경된 일정으로 약속이 어긋나고 현지의 아티스트들과 작업하는 것으로 계획을 수정한다. 그리곤 하바나 뒷골목에서 쿠바음악 전성기 시절의 대가들을 수소문해서 모으고 허름한 스튜디오에서 단 6일 만의 녹음작업으로 14곡이 담긴 라이브음반을 만든다.
이때의 프로젝트 음반이 바로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이다. 1997년에 발매된 이 앨범은 그 해 그래미상을 수상했고 전 세계 800백만 장의 앨범판매와 빌보드차트 1위를 기록하며 기적적인 대성공을 거뒀다. 또 공연실황과 음반제작의 전 과정들을 기록한 다큐영화로 유럽 유수의 영화제에서 여러 차례 수상하고 아카데미상에 노미네이트 되기도 했다. 하바나 시내에 있었던 동명의 클럽은 1930년 40년대 그 시절 최고의 뮤지션들이 공연하던 실제의 고급사교클럽이기도 하다. 1959년 쿠바혁명이후 클럽들이 패쇠되고 사회주의 선동음악에 밀려 쿠바재즈음악의 명맥이 끊어져 가고 있었다. 한 제작자의 우연한 의지가 뿔뿔이 흩어진 쿠바의 음악을 되살려 낸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잠자던 재능과 열정을 일깨워 세상에 드러낼 수 있게 만든 진짜 원동력은 인물 한사람 한사람의 인생 여정이 말해주듯이 삶의 고비마다 사랑하는 음악을 지키기 위해 애쓰고 노력했던 치열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스튜디오에서 인터뷰하는 72세 할아버지의 평범한 모습에선 어디 한군데 볼레로명가수의 모습이라곤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러나 노래가 시작되자 목소리에서 우러나오는 짙은 호소력과 눈빛에서 뿜어 나오는 미묘한 광채에 그만 압도되고 만다. 연륜이란 그런 건가 보다. 평생을 노래로 살아 온 그의 저력은 노래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12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고아로 살아온 이브라임 할아버지는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며 연명하다 가수가 되었다. 무대에 설 공간을 잃은 이 십여 년을 쿠바의 넷 킹 콜이라 불리던 이브라임 페레르는 또다시 거리로 나와 구두닦이와 거리공연으로 생계를 이어왔다. 영혼을 울리는 노래란 삶의 애환이 배어있는 이런 노래를 말하지 않을까. 무심한 듯 읊조리는 노래 속에 진진한 그의 일생이 담겨있다. 이브라임이 들려주는 나사로지팡이에 대한 추억은 그의 긍정적인 인생관을 잘 말해준다. 나사로지팡이가 너를 지켜줄 것이니 잘 간직하라는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58년동안 소중히 간직한 어머니의 유품. 오늘 내가 누리는 이 행운은 어머니 덕분이라며 지팡이를 들어 보이는 할아버지는 주어진 모든 걸 긍정하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소박한 행복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콤바이 세군도 92세, 루벤 곤잘레스 80세, 오마라 포르투온도 70세, 참으로 멋진 노년의 모습들이 화면을 꽉 채운다. 세월이 그들의 젊음을 앗아갔지만 그 세월 덕분에 그들의 음악과 열정은 더욱 빛이 나고 있었다. 쿠바에서 태어나면 가수 아니면 댄서가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감성 풍부한 나라답게 쿠바인에게 음악은 일상인 듯 보였다. 암스테르담 공연 이후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은 같은 해 7월에 꿈의 무대 미국의 카네기 홀에서 공연하는 행운을 얻는다. 꿈같은 일이 현실로 이루어진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엔딩 컷은 카네기 홀의 공연장면이다. 객석을 가득 매운 열기와 뜨거운 박수소리, 폭발할 듯 끓어 넘치는 에너지에 나도 모르게 두 손을 꼭 잡는다. 마치 그 자리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어 벌떡 일어나 박수를 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브라보!
쿠바의 국기를 흔들며 나온 관객 하나가 무대 위로 국기를 전하는 장면에선 울컥한다. 미국 뉴욕 한복판에서 그들의 말 못한 설움을 일순간에 떨쳐내는 것 같은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건 없다는 변하지 않는 진리가 새삼스럽다. 적이 되어 살았던 긴 시간들이 사그라지는 건 이런 한 순간이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알토 세드로에서 마르까네로 가네. 쿠에토에 도착하면 마야리로 가야지.’ 찬찬의 역동적인 선율이 공연장 안을 뜨겁게 채운다. 세계에서 가장 나이 많은 고령의 아티스트들이 감격어린 얼굴로 손을 흔들며 관중들에게 답례한다. 카네기 홀의 공연은 이렇게 감동 속에서 막을 내렸다.
인생의 막은 어찌 내려질지 알 수 없다. 쿠바의 골목에서 황혼의 삶을 살아가던 노인들이 세계적인 아티스트로 거듭나게 되리라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라틴음악의 종주격인 쿠바의 음악으로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이들, 지금은 과반수의 멤버들이 돌아가시고 몇 분만이 생존해 계신다고 한다. 여전히 노익장을 자랑하며 당당하게 세계 순회를 하고 있는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 내년 2016년 3월 내한 공연 일정도 있단다. 그들의 열정어린 모습을 직접 만나 보고 싶다.
카리브해의 아름다운 섬나라 쿠바 거리의 고색창연함이 내내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인공 중 하나는 하바나의 이색적인 거리풍경이다. 낡고 허름한 골목길에서 만나는 얼굴들은 거리의 남루함과는 상관없이 모두가 여유롭다. 60년대 초반 미국의 경제봉쇄 조치 이후 내핍재정으로 가난을 인내한 쿠바의 풍경에선 혁명을 성공한 나라의 자부심과 가난하지만 결코 초라하지 않은 나라의 자존감이 느껴진다. 체 게바라의 초상이 길 곳곳에 그려져 있고 마르크스의 금언들이 아무렇지 않게 적혀있는 거리에는 낡은 건물들 사이로 골동품이 다된 낡은 클래식 카들이 달린다.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이들은 한 목소리로 자신이 사는 쿠바가 자랑스럽다고 말한다.
2015년 미국과 쿠바는 오십 여 년의 외교단절에서 벗어나 새롭게 수교를 맺었다. 남미 유일의 사회주의 국가인 쿠바에도 이제 자본주위의 물결이 세차게 몰아칠 것이다. 세계 어디에서도 만날 수 없는 쿠바만의 독특한 색깔은 경제 개방과 더불어 사라져 갈 위기를 맞을 지도 모르겠다. 금권만능주의를 향한 세상의 큰 흐름을 막아설 도리가 있을까. 그러나 거센 소용돌이 속에서도 쿠바만의 향기와 정열을 꿋꿋이 지켜내길 바랄뿐이다. 낡은 오픈카가 달리던 영화 속 하바나 거리가 오래오래 건재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