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기념일에
눈 내린 해운대를 한참 전에 떠나 왔다.
국도를 조심스레 달려 가까스로 당도한 간절곶
바닷가엔 아무도 없었다.
먹구름으로 가득한 회색 바다와
휘몰아치는 바람이 사방을 뒤흔들고 있을 뿐.
바람을 피하거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은 보이지 않는다.
이 황량한 바다를 왜 만나고 싶었던 걸까.
하얗게 눈 쌓인 7번 국도 바닷길을 따라 송정, 일광, 기장을 지나왔다.
2월의 남쪽에 이런 큰 눈이 내릴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이틀 내내 추위에 움츠리며 너무나 변해버린 부산이란 낯선 도시를 헤매고 다녔다.
자갈치시장, 광복동 국제시장, 보수동 책방골목, 감천마을
광안리 야경, 해운대 달맞이길
짧은 시간 참 많은 곳을 둘러보았다.
돌아 가는 길이 못내 아쉬워 찾아온 울산 간절곶
겨울바다 풍경은 을씨년스럽기만 했다.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는 바람을 피해 소망우체통에 들어선다.
낙서 가득한 창 너머로 흐린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잠시 후 소망우체통에 소망 하나 남기고 돌아섰다.
그때 난 무얼 소망했을까.
가족과 떠난 여행이었으니 아마도 가족의 안녕을 빌었겠지.
커다란 통창이 예쁜 간절곶 엔제리너스에 들어섰다.
창밖에는 여전히 거센 파도가 몰아친다.
헤이즐넛
카페모카
카라멜 마키아또
우린 세 잔의 커피를 앞에 두고 겨울바다를 바라보았다.
추위에 떨다가 마시는 따뜻한 카페모카 한 잔
휘핑크림의 달콤함이 입안 가득 번진다.
그때 받았던 커피쿠폰은 결국 쓰지 못하고 시간이 지나갔다.
다시 가고 싶은 마음 간절했건만
마음 먹은대로 살기엔 정말이지 큰 노력이 필요하다.
지난 주말 결혼기념일을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그런 소소한 것들에 무심하게 된 걸 보면 이젠 늙어가나 보다.
은혼식을 대신해 아들과 함께 떠났던
2년 전의 가족여행을 추억하는 것으로 마음 속으로나마 기념해본다.
사진 속 그때의 나는 지금보단 조금 더 젊었던 것 같다.
추위에 떨며 지낸 그 이틀의 모든 것들이 어제 일처럼 훈훈하게 그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