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강가에서
겨울이 지나가는 강은 온통 회색빛이다. 멀리 햇살비치는 자리에 은빛 윤슬의 반짝거림이 잔잔한 물결을 만들고 있다. 산 그림자가 내려앉은 강가엔 군데군데 살얼음이 얼었다. 메마른 갈대가 성글게 돋은 수면은 계절 탓인지 쓸쓸해 보인다.
묵묵히 흐르는 강은 많은 것들을 품어준다. 꽃비 흩날리던 봄날의 기억도, 낙엽 진 가을의 추억도, 메마른 어느 겨울 날의 쓸쓸함도. 바라보는 이의 사연 모두를 보듬어주는 듯 겨울강은 언제 봐도 편안하다. 이 강가를 참 많이 걸었다. 아무 때라도 다가갈 수 있는 강이 가까이 있어 위로가 된다.
춘천 가는 기찻길, 경춘선의 옛 철로 위를 걸어간다. 이 철길은 낭만의 대명사로 불리던 길이다. 지나간 청춘의 그림자를 걷어내기라도 한 양 폐선로를 전부 걷어버린 길을 따라 강가를 걷는다. 팔당 강변을 걷노라면 술 마시고 노래하며 고래사냥을 떠나려했던 철없는 날들이 어른거린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있으랴. 젊음의 방황은 젊음에게만 허용된 특권 아니던가. 그 흔들림 모두가 인생이란 꽃을 피우기 위한 귀한 시간이었을 터.
자전거라이더들이 옆을 스치고 지나가는 직선 도로는 심심하다. 터벅터벅 걸으며 이 생각 저 생각 흐트러진 상념들에 잠겨 본다. 길게 뻗은 아스팔트길 위에서 작은 점이 되어가는 사람들. 존재의 의미는 때론 특별하기도 하고 미약하기도 하다. 나와 가까이 있을 땐 타인이란 존재도 우리라는 친밀감으로 서로에게 유의미해진다. 그러나 길 위의 점처럼 아득히 멀어지면 우린 서로에게 별 의미 없는 존재가 되고 말 것이다. 오늘을 살아가며 오늘의 소중한 의미로 내 가까이에 존재하는 사람들. 지금 여기, 내 옆에 유의미하게 존재하는 이들은 내가 선택한 귀한 인연일 것이다.
새 단장을 위해 잠시 문을 닫은 카페 봉주르의 직원들이 지나가는 이들에게 컵라면과 커피를 나누고 있다. 차양 아래서 감사한 마음으로 요기를 했다. 나그네들에게 대가없이 베푸는 나눔은 주는 이와 받는 이 모두에게 큰 기쁨을 선사해준다.
강을 따라서 조안면 능내 길을 걷는다. 길을 걷고 있는 이들의 자잘한 웃음소리 뿐. 적막 속 바람 잦아든 겨울 풍경은 별반 움직임이 없다. 어느 해 봄 도심역에서 산길을 넘어 팔당역을 향해 걸었던 적이 있다. 개나리가 막 지기 시작하고 온갖 꽃들이 앞 다투어 필 무렵 흐드러진 봄 향기에 취해 산길을 걸었다. 아무 것도 마음에 담지 않고 봄 길의 정취에 푹 빠져들었다. 무언가에 몰입하던 찰나의 충족감. 온 세상에 꽃향기와 나와 봄날의 따뜻한 공기만 가득한 것처럼 느껴졌다.
순간순간의 만족감들을 놓치고 살다가 오랜만에 경험한 충일감이었다. 머릿속에 꽉 채워진 것을 잠시 비우면 쉽게 느낄 수 있는 감정인데 어디에든 무거운 짐을 끌고 다닌 건 아닌지. 생각이란 짐을 내려놓으면 조금 더 편안해질 텐데 말이다. 일상을 벗어났으니 일상의 것들은 잊고 그냥 그 하루 풍경이 되어보자.
요 몇 해 동안 양수리도 참 많이 변했다. 지금 십년의 변화는 과거 백년의 변화와도 버금가는 시간이란 걸 이럴 때 절감한다. 몇 해 전 홀로 걸었던 한가로운 시골 정경은 사라지고 말쑥하게 단장한 도회적 공간들이 길 양편을 조금씩 차지해가고 있다. 전철을 타고 양수역에 내려 타박타박 걸으며 두물머리 오래된 느티나무를 찾던 일은 어느 새 추억 속 장면이 되고 말았다.
옛 기억들 위에 새로운 기억을 더하며 팔당 강변을 지나고 능내 길을 걸었다. 양수리로 가는 길, 이 길은 아쉬움과 그리움으로 지난 시간을 돌아보게 하는 길이다. 무작정 걸으며 강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 편안해지는, 내가 좋아하는 길이다. 사는 건 늘 그렇게 강물처럼 흘러가는 것 같다. 떠나보낸 걸 아쉬워하며 새롭게 채워가고, 지나간 날을 그리워하며 먼 훗날엔 다시 오늘을 그리워하고. 어쩌면 걸었던 길을 또 걸으며, 내가 좋아하는 길을 끝없이 걸어가는 것, 살아가는 일이란 그런 것일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