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유봉이야기
지금의 선유도공원에는 선유봉(仙遊峯)이라는 매혹적인 산이 있었다. 신선이 놀던 산이라는 뜻이다. 관악산과 청계산의 서쪽 물과 광교산 수리산 소래산의 북쪽 물을 몰고 온 안양천이 산자락을 휘감으며 한강에 합류하는 지점에 붓끝처럼 솟아난 산봉우리였다.
선유봉 양쪽 아래 나루에는 삼 사 십여 호의 제법 큰 마을이 들어서 있었다. 강변에는 서울로 가는 큰 나루와 안양천을 건너 양천으로 가는 작은 나루가 있었는데 양화(楊花)나루라 불렀다.
산의 형상이 발끝을 세운 고양이를 닮아 괭이산이라고도 불린 선유봉은 두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절벽의 경치가 아름답기 그지없었다고 한다. 중국 황하에 있는 저주봉과 같다고 하여 ‘저주봉’이라고도 불리었다.
<정선의 경교명승첩 중 '선유봉' 안양천 건너 염창리 쪽에서 본 260년 전 풍경>
본래 높이 40m의 선유봉은 지금의 합정동 절두산(잠두봉)과 마주 보고 서 있었으며 한강변 양화진의 절경이었다. 고려시대부터 있었던 양화도 나루터를 경유하여 잠두봉을 잇는 명승지로 중국 사신들도 그 경치를 사랑하여 많은 시를 남겼다. 시인 묵객들은 옛날부터 이곳에 많은 누각과 정자를 짓고 거처하기도 하였다. 양녕대군은 만년에 이곳에 영복정을 짓고 한가롭게 지냈다고 전해진다.
말년에 양천현령으로 부임한 겸재 정선은 한강 일대의 수려한 풍광을 경교명승첩, 양천팔경첩 등의 화첩으로 남겼다. 양화진·행호 일원에는 절경을 자랑하는 여덟 곳이 있다. 선유봉·이수정·소요정·공암·소악루·개화사·낙건정·위래정 등이 바로 양천 팔경으로 예로부터 수많은 시인 묵객의 발길을 묶었다. 특히 선유봉의 소나무 숲이 가장 빼어난 절경으로 꼽혔다. 경교명승첩에 그려진 한강의 모습으로 사라진 옛 정취를 짐작해볼 따름이다.
<양천팔경>
악루청풍(岳樓淸風) ; 소악루의 맑은 바람
양강어화(楊江漁火) ; 양화진의 고기잡이 불
목멱조돈(木覓朝暾) ; 목멱산의 해돋이
계양낙조(桂陽落照) ; 계양산의 낙조
행주귀범(杏州歸帆) ; 행주로 돌아드는 고깃배
개화석봉(開花夕烽) ; 개화산의 저녁 봉화
한산모종(寒山暮鐘) ; 겨울 저녁 산사(개화산 약사사)에서 들려오는 종소리
이수구면(二水鷗眠) ; 안양천에 졸고 있는 갈매기
<지금의 선유도>
1930년대 일제가 여의도비행장을 건설하면서 골재를 채취하기 위해 이곳에 채석장을 만들었다. 그 후로도 제방 건설과 도로 건설을 위해 석재를 계속 채취하여 그 아름답다던 선유봉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1965년 양화대교(제 2한강교)가 개통되고 1968년 본격적인 한강 개발이 시작되면서 선유도는 섬이 아닌 섬이 되었다.
1978년에는 식수확보를 위해 선유도 정수장이 신설되었다. 2000년 선유도 정수장이 폐쇄된 뒤 버려진 선유도에 물을 주제로 한 공원을 조성하게 된다. 산업화의 증거물인 정수장 건축 시설물을 재활용하여 녹색 기둥의 정원, 시간의 정원, 수질정화원, 수생식물원 등을 만들었다. 폐정수장 건물이 자연과 공유할 수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환경재생 생태공원으로 재탄생하게 된 것이다. 2002년 4월 26일, 선유도공원으로 문을 열며 시민들에게 개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