쉘부르의 우산
이 아름다운 프랑스영화를 처음 본 건 중고등학교 때이다.
흑백 TV의 작은 화면을 통해 보았던 주말의 명화.
잔잔한 아픔 같은 게 오래도록 느껴지는 무척 슬픈 스토리의 영화였다.
너무도 빤한 사랑이야기라 어쩌면 식상한 내용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 슬픔의 여운이 진하게 남아있는 건
어린 날의 감성에 깊숙이 각인 된 탓이기도 하겠다.
여주인공 까뜨린느 드뇌브가 부른 불어가사의 주제곡을 들을 때면
뜻도 모른 채 눈물을 그렁거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 시절에 오히려 지금보다 더 많은 영화를 보았던 것 같다.
초원의 빛, 애수, 로마의 휴일,
전쟁과 평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콰이강의 다리,
카사블랑카, 지상에서 영원으로, 티파니에서 아침을,
쿼바디스, 벤허, 왕과 나,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
에덴의 동쪽, 자이언트, 사운드 오브 뮤직,
돌아오지 않는 강, 7년만의 외출, 어둠속에 벨이 울릴 때,
새, 어느 날 밤에 생긴 일, 철도원,
사랑은 비를 타고, 화이트 크리스마스,
금지된 장난, 길, 종점,
해바라기, 흑인 오르페, 닥터지바고.......
곰곰이 생각하다보면 더 많은 작품이 떠오를 지도 모른다.
모두 TV를 통해 본 옛날 영화이긴 하지만
한참 순수할 무렵에 접했던 작품들이기에 장면 장면의 이미지들이 여태 남아 있다.
지금도 어렴풋이나마 그 영화들을 기억하는 이유는 영화음악도 한 몫 하지 않았을까 싶다.
거의 대부분의 영화에 유명한 주제곡이 있었다.
오토리버스카세트로 몇 번을 반복해서 들으며 그 음악이 흐르던 장면을 그려보곤 했다.
엄마의 사촌동생이 고향에서 올라와 우리 집에서 서울살이를 잠시 한 적이 있었다.
우리 식구만 살기에도 좁은 집이었지만 모두 어렵게 살던 때라 거절도 못하고 두어 해 같이 지냈다.
명동에 있는 큰 은행에 근무한 아저씨는 나와는 대여섯 살 정도의 차이였다.
그 아저씨의 살림목록에 그때만 해도 꽤 귀했던 카세트가 있었다.
영어공부를 위해 장만한 재생기능만 있는 묵직한 카세트였다.
학교에 가서도 그 카세트만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얼른 집에 가서 아저씨가 퇴근하기 전에 음악을 듣고 싶었다.
팝송과 영화음악테이프를 세트로 소장한 통 큰 오촌아저씨 덕분에 나의 하교 길은 한동안 신나고 즐거웠다.
오랫동안 추억의 영화들에 푹 빠져들게 해준 그 아저씨는 서울에서 무사히 정년을 마치고 지금은 용인에서 잘 살고 계신다.
그때를 돌아보면 지금은 참 여유로운 생활을 누리고 있다.
못 먹어서 배고프기보다 너무 많이 먹어서 병이 나고 살아가는 것에 필요한 것들은 남아돌아 귀한 줄도 모르고.
그런데도 사람들은 내게 넘치는 것보다 부족한 것에 더 얽매인다.
그 무렵의 맑은 가난이 그립다면 너무 배부른 소릴까.
흑백 화면에서 본 주말의 영화 한 편이 일주일을 내내 행복하게 만들던 그 시절이 그립다면 욕먹을 소릴까.
아니, 그때의 궁핍을 그리워하기보다 그때의 작은 만족들이 그리워진다.
너무 큰 걸 바라지도 않고 너무 큰 것과 비교하지도 않았던 소박한 마음들이 가끔씩 그립다.
묵직한 카세트에서 흘러나오던 추억의 영화음악들도 문득문득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