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선동 풍경
서울의 옛날, 그리고 변화하는 오늘의 모습을 만날 수 있는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한옥마을 익선동에 가보자.
종로구 익선동 166번지, 종로3가역 높은 빌딩들 사이에 위치한 익선동에는 110여 채의 한옥이 모여 있는 마을이 있다. 조선시대 지명은 '정선방 익동'이었다. 익동의 '익', 정선방의 '선'을 합해 익선동이라고 불리게 됐다는 이 한옥마을은 일제 강점기인 1920년대 초 도시형 한옥마을로 개발된 이후, 100여년의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2004년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된 뒤 10여 년간 추진돼오던 재개발 계획이 무산되고 최근에는 젊은 창업자들이 들어와 오래된 한옥을 정비, 개조하면서 개성 있는 카페, 갤러리, 공방 등이 새로이 둥지를 틀고 있다.
현재 익선동 한옥마을의 거주민 중 원주민의 비율은 20~30% 정도로 나머지는 저소득층 세입자들이나 외지인들이다. 차도 들어올 수 없는 좁은 골목길, 겨울이면 한기가 도는 불편한 한옥.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 십 년째 한옥에서 지내며 익선동 골목을 지켜온 토박이 주민들이 있다.
한옥마을의 재개발 계획이 백지화되면서 최근 익선동에는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젊은 창업가들이 한옥의 원형을 보존하면서 개발하는 쪽으로 변화의 가닥을 잡아가고 있는 것이다. 2014년 말부터 전통과 현대가 결합한 개성 있는 카페, 갤러리, 공방 등이 잇달아 문을 열고 있는 익선동. 초입 골목에는 한옥을 리모델링한 갤러리이자 카페인 '익동 다방'이 있다. 설치미술 작가인 박지현 씨(29세)와 박한아 씨(33세)가 함께 만든 곳이다. 그들은 한 평짜리 쪽방을 얻어 '익선다다'라는 사무실을 차려놓고 익선동 거리를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거리를 훼손시키지 않으면서 익선동에 자연스럽게 흡수되고 싶다는 젊은 창업자들. 그들은 익선동의 기존 원주민들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고 공존해야할지 항상 고민한다. <2016년 2월 인터넷 기사 발췌>
지난 2월 한 방송의 다큐 프로에서 익선동의 3일을 방영한 적이 있다. 이곳은 북촌, 서촌에 이어 새로운 관심을 받고 있는 핫 플레이스기도 하다.
사실 지금에야 북촌이 깔끔한 이미지를 갖고 있으나, 북촌이 정비되기 이전인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북촌 한옥의 수준은 현재의 익선동과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오히려 당시에 익선동 한옥 주택의 가격이 북촌에 비해 높았다고 한다.
익선동의 역사를 보면 재밌는 구석이 있다. 1920년대 경성의 인구팽창에 따라 일제가 시내 요지를 매입하기 시작했다. 그에 맞서 한 개발업자가 북촌과 익선동 일대를 매입하였다.
“1920년대 경성의 상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지방의 가난한 조선인과 유지층들이 경성으로 이주하면서, 조선인 인구가 급증하였고 이들이 거주하려는 지역은 북촌이었다. 일본인 역시 인구가 급증하였는데, 이에 대한 대응 전략의 하나는 일본인 주거지를 북촌으로 확장시키는 것이었다. 따라서 북촌 지역은 이질적 계층들이 한정된 토지를 놓고 경합하는 곳이 되었고, 당연히 자본력이 막강한 일본인에게 유리한 형국이었으며 많은 조선인은 분개하고 좌절하였다.
하지만, 조선인들을 위한 주택을 제공하는 새로운 조직(회사)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근대적 디벨로퍼의 출현이다. 이들이 건설한 한옥은 기존의 한옥과 전혀 다른 형태였다. 이 한옥들은 과거와 달리 아주 작은 규모였고 한 채씩 지어진 것이 아니라 대단지로 개발되었다. 우리가 현재 삼청동, 가회동, 익선동에서 볼 수 있는 근대적 한옥 집단 지구가 탄생한 것이다.” <건축왕 정세권 - 김경민교수>
북촌과 익선동 한옥의 지금의 역사는 정세권에 의해서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도 이들에 대한 평가는 매우 박하다. 당대 최고 건축가 박길룡은 저택을 부수고, 소규모 한옥 단지로 개발하여 주거 환경을 악화시킨다고 비난하였고, 이들은 '집 장사'로 매도되었다.
그렇지만 1920년대 북촌 지역에서 그들이 근대식 한옥 집단 지구를 건설하지 않았다면, 아니 못했다면 우리가 북촌에서 바라보는 주택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조선인들을 위한 주택 개발을 조선인마저도 안 했다면, 서촌의 적산 가옥 집단 지구에서 볼 수 있듯이 경제력이 월등한 일본인들을 위한 주택이 대량이 공급되었을 수 있다. 우리가 마주한 삼청동의 모습은 대량의 적산 주택 단지이지 한옥 집단 지구가 아닐 수 있다.” <1920년 근대적 디벨로퍼의 등장과 그 배경 - 구경하, 김경민>
서울의 옛날을 기억하게 하는 익선동, 그 곳에서 여전히 진행 중인 변화의 바람이 너무 강하지 않기만을 조심스레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