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왕제색도
여름 장마가 잠시 멎은 오후였다. 비가 오락가락 하던 날 옥인동을 찾았다. 겸재 정선의 수묵화 인왕제색도의 실사판을 만나보기 위해서다.
경복궁역을 나와 효자동입구에서 마을버스를 탄다. 버스는 좌회전 신호를 받은 후 좁은 골목길로 들어섰다. 짧은 간격의 정거장 몇 곳을 지나고 얼마 후 종점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려서며 무심히 앞을 바라봤다. 순간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잿빛하늘 아래 인왕산의 장엄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눈앞에 불쑥 다가온 그 풍광은 시공을 초월해 나타난 공간처럼 놀라웠다. 마치 삼백여년 전 겸재가 그린 인왕제색도 속으로 순식간에 걸어들어 온 것 같은 신비감이 들었다. 수도의 심장 한복판에 이런 비경이 숨었다니. 한참을 멍한 기분으로 바라보았던 것 같다.
옥인동 골목 끝에서 시작되는 계곡을 따라 걸었다. 장마 끝에 불어난 계곡 위로 기린교가 놓여 있었다. 겸재의 그림 속 위치에 복원한 석교였다. 옥인아파트가 철거되며 원래의 모습을 찾은 비밀의 정원. 수성동은 방금 전 버스를 타고 지나왔던 도심과는 너무도 판이한 별세계였다. 옥인동 골목길을 천천히 거슬러 올라가 마주했더라면 그런 경이감은 덜 했을지 모른다. 그 후로도 두어 번 다녀왔지만 첫날의 감동만큼은 아니었다.
북촌이 양반가의 거리였다면 서촌은 중인과 예인의 거리였다. 경복궁의 서쪽에 있어 서촌이라 불린 이 동네는 조선조와 근 현세에 많은 예인들이 기거하던 예촌이기도 하다. 서촌과 수성동이 서울 600년사와 무관하지 않기에 마을의 역사 또한 무궁무진하다. 오랫동안 감춰져있던 수성동계곡은 세간의 관심을 받으며 많은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너른 암반 사이로 흐르는 이 계곡은 예로부터 옥류라 칭해졌다. 지금은 수량이 줄어 옛 문헌에서 말하는 선경의 정취를 찾긴 힘들다. 청운동으로 오르는 샛길을 지나 자하문터널 위의 백운동천을 만난다. 숲 속 바위벽에 새겨진 웅장한 필치의 묵직한 네 글자 백운동천. 이 바위는 독립운동가 김가진의 집터에 있다.
서촌은 풍성한 예향인 반면에 과거사의 수치도 남아있는 곳이다. 송석원 터에 남은 벽수산장의 흔적은 매국노 윤덕영의 흥청망청한 삶을 말해주고 있다. 일제 치하 나라를 팔아 호위호식하던 친일인사, 역사의 준엄함이란 치욕의 흔적조차도 기억하는 것에 있을 것이다. 지난날의 영광이 후대를 자랑스럽게도 하지만 어쩌면 부끄러운 치적들이 우리를 더 고양시키는 동력일지도 모른다. 영광과 오욕이 뒤얽힌 역사에서 자랑스러운 순간만큼이나 굴곡진 시간 또한 유효할 것이다. 고통이 정신을 성숙하게 만드는 것처럼 아픈 역사가 우리를 더 전진하게 만드는 건지도 모른다.
조선조 장동이라 불리던 서촌에 걷다 보면 마음 한 구석이 아릿해진다. 근현대의 살아있는 역사박물관을 너무 방치하는 건 아닌가 싶어서다. 이곳에는 안평대군의 비해당 터와 겸재의 집터, 윤동주, 노천명, 이상의 집. 이중섭, 이상범, 박노수 가옥 등 수많은 문인과 화가의 유적지들이 남아 있다. 그나마 원형을 지키고 있는 몇 곳을 제외하곤 아예 흔적도 없이 사라진 곳도 있고 대부분 민가에 묻혀 제 모습을 보존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인 배금주의를 향한 오류들이 안타깝다. 역사의 보전을 위해 개인의 이해관계를 제한하기란 결코 쉬운 일은 아니겠다. 하지만 이 마을의 가치가 더는 훼손되지 않기를 이곳을 사랑하는 이들의 의지에라도 기대보고 싶다. 모두의 꾸준한 관심과 사랑만이 이곳을 산 역사의 거리로 남게 하는 길이 아닐지.
역사의 흔적을 돌아봄은 지난날을 되짚어본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과거의 재해석 과정일 수도 있다. 한 발자국 떨어진 거리에서 되돌아보며, 오늘의 시선으로 의미를 찾아내는 일은 현재의 시점에서 재해석하여 긍정의 정체성을 만들어 가는 일이다. 지나간 역사를 바르게 해석하고 새로이 정리하는 작업은 지금의 역사를 올바르게 쓰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일 것이다.
그런 의미의 서촌기행이었다. 지난여름 수성동계곡을 처음 본 순간의 감동을 다시 한 번 느꼈던 일정. 동행한 P님의 해박한 해설과 더불어 겸재정선의 <장동 팔경첩>속을 유유자적 거닐다 왔다. 단순한 지식의 전달이 아닌 철학이 담긴 역사해설은 흥미진진했다. 오랜만에 무언가에 몰입할 수 있었던 뜻깊은 자리였다.
백석동천, 백운동천, 청풍계의 시원한 바람과 장쾌한 인왕의 풍광에 매료되어 어느 덧 조선 사나이들의 풍류에 흠뻑 젖어들었던 것 같다. 역사의 희 노 애 락이 새겨진 서촌의 지난 시간들을 오늘의 의미로 되돌아보며 그 시간들이 길 곳곳에서 아직 이어지고 있음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