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새해를 맞으며

정진숙 2017. 1. 6. 16:34

 

신년 초에 읽은 책의 한 구절이다.


“인간만이 가정법 속에서 살 수 있겠지. 내가 그녀랑 살았더라면. 내가 그녀와 헤어지지 않았더라면. 내가 다른 직업을 구했더라면. 내가 그때 아파트를 샀더라면. 내가 그때 너를 몰랐더라면.

그러나 그 가정법 속의 환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와 상관없이 미래는 여전히 불확실성 속에 있겠지. 인간은 그런 점에서 다들 조금씩은 허구적 존재야. 실제로 살지 않은 삶에 영향을 받고 있잖아.

신은 우리에게 허구를 상상하는 능력, 또 다른 현실, 더 나은 미래를 그려보는 능력을 주셨어. 신은 우리에게 기억력을 주셨고 그것을 말하는 능력을 주셨고 결핍을 느끼는 능력, 욕망하는 능력을 주셨어. 자기 인생을 상상 속에서 정산해보는 능력을 주셨어.

우리는 이런 것들로 우리의 불안정함을 견뎌나가고 있는 것 아닐까? 이런 것들이 있어서 현재에 갇혀 있지 않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런 것들이 있어서 우리는 간신히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정혜윤, 마술 라디오 중에서>

 

지극히 현실적으로 변해버린 나를 한방 먹이는 문장이었다.

언제부턴가 가정법의 어법을 극도로 싫어하기 시작했다.

허구는 허구일 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망상에 불과하다고 여겼다.

만약에 뭐뭐가 된다면? 만약에 뭐뭐 했더라면?

오지 않은 미래는 그렇다 치고

이미 지난 시점에서 만약에가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상황은 흘러 흘러서 지금이 된 이 마당에 바보같이 만약에, 라니.

 

가정법을 외면하며 사는 사이에 나도 모르게 놓친 하나가 있었다.

상상력이었다.

나는 아무 것도 그려보려 하지 않았다.

눈앞의 현실만 감지할 뿐 다른 무언가를 유추해보는 짓을 더는 하지 않았다.

수많은 동화를 그리던 말랑말랑한 심장을 차갑게 식히기 시작한 것이다.

 

너무나 많은 실망과 너무나 잦은 좌절 끝에서

무엇이든 가능할 것만 같던 마술의 세계를 벗어나고야 말았다.

그때부터 상상이라는 무한의 외연을 닫고

나 스스로가 현재라는 한계에 갇혔는지도 모른다.

간신히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없애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상상력 부재의 글쓰기란 불가하기에

그래서, 꿈에서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 건지도.

 

불필요하다 여겼던 가정법의 상상들은

어쩌면 내 삶을 변화시키는 꼭 필요한 환상은 아니었을까.

오래 전 잘라버린 상상력의 날개가

원한다고 갑자기 돋아나진 않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다시 가정법 속의 나를 꿈꾸어보자.

아주 조금씩만이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