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남산에 가면

정진숙 2017. 1. 9. 11:51

새벽 6시가 조금 안 된 시간이었다.

남산 중앙도서관 앞엔 이른 시각에도 언제나 긴 줄이 이어져 있었다.

한여름이건 한겨울이건 계절을 불문하고 길게 늘어선 줄은 변함없이 그대로였다.

부지런한 이들에 밀려 남산도서관 열람실은 구경도 못해보고

서울에서 제일 높은 곳의 도서관 자리엔 결국 앉지 못하고 말았다.

 

그 건물이 어린이 회관일 무렵

서울로 전학 온 5학년 때 단체로 관람 왔던 적이 있다.

첨 본 신기한 놀이기구와 과학실

고만한 아이 눈높이에 맞는 것들에 마음 콩닥거린 데가 이곳이다.

 

스물한 살 일 년 동안 자주 남산 도서관을 찾아왔다.

중앙도서관엔 들어가지도 못하고

차선책으로 긴 계단을 내려가 도로 건너에 있는 용산 구립도서관을 이용했다.

한겨울 첫 새벽 꽁꽁 언 건물에 난방밸브 올리는 소리를 들으며

용산 도서관 열람실로 들어섰다.

이른 시간에 그곳에 오는 이는 많지 않았다.

제일 안쪽 창가에 앉아 졸리는 걸 참아가며 책장을 넘겼다.

출근하기 전 기껏해야 두 시간 남짓.

 

남산에 갈 때면 춥고 가난하던 스무 살 그 시절이 떠오른다.

열심히 무언가를 향해 달렸던 나이,

여태 넉넉히 산 적은 없지만 그때만큼은 유독 추웠다.

무엇 하나 녹녹한 게 없는 연약한 청춘이었기에

보이지 않는 미래가 늘 불안하고 두려웠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유난히 추웠던 그때만큼 따뜻했던 날도 없었던 것 같다.

입시라는 흔들리지 않는 목표가 있었고

목표를 위해 앞만 보고 달리던 치열함이 있었다.

불투명한 내일일망정 무엇이라도 가능한 젊음이란 재산이 있었기에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뜨거운 날들이 아니었을지.

 

아마 지금 나의 모습은 그날들의 연장일 것이다.

다하지 못한 젊은 날의 아쉬움을 마저 채우는 날들을

열심히 살고 있는 것이리라.

결과가 아닌 과정을 살아가는 것, 그게 삶이니까.

남산에 가면 혼신을 다해 살아가던 그런 나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