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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음의 기적
정진숙
2017. 1. 21. 12:01
설을 앞둔 며칠 전이니 꼭 이맘 때였다.
희끗희끗 진눈개비가 날리던 우울하고 흐린 날이었다.
이른 오후 일터로 걸려온 전화 한통
수화기 너머에서 믿기지 않는 소리가 들려왔다.
입원했던 친구가 하늘나라로 갔다는.
아무 말도 못하고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던 것 같다.
이제 스물 한살인 친구인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멍하니 한참을 있다가
뒤늦게야 울음을 터뜨렸다.
가슴에 턱하니 뭐가 얹힌 것 같은 갑갑함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제 오후가 그랬다.
지인의 큰아들이 쓰러져 의식이 없다는 소식을 듣고
설마 괜찮겠지 했었다.
안타깝게도 끝내 소생하지 못하고 말았다.
오래 전 일이 데자뷰처럼 떠올랐다.
숨이 턱 막히던 그때의 느낌이 생생하게.
사람 사는 일이 어찌 맘대로 될까마는
새파란 젊은이의 주검 앞엔 원망이 앞선다.
하늘도 무심하지
이제 겨우 서른인데.
지인의 가족에겐
온 세상이 암흑일 것이다.
이미 작고한 수필가 장영희의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중의 문장을 덧붙여 본다.
“‘생명’을 생각하면 끝없이 마음이 선해지는 것을 느낀다.
행복, 성공, 사랑-삶에서 최고의 가치를 갖고 있는 이 단어들도 모두 생명이라는 단어 앞에서는 한낱 군더더기에 불과하다.
‘살아 있음’의 축복을 생각하면 한없이 착해지면서
이 세상 모든 사람, 모든 것을 포용하고 사랑하고 싶은 마음에 가슴 벅차다.”
오늘도 아무 일 없었던 듯 하루가 저물어간다.
매일매일 하루하루의 기적같은 날들이 얼마나 감사한 줄도 모른 채
생명, 그 중한 가치를 너무 허투루 소비한 건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