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록강은 흐른다
‘압록강은 흐른다’
이 소설의 제목을 보는 순간 나의 기억은 아득한 시절로 돌아간다.
한참을 내 곁에서 머물렀던 소설이다.
까마득히 오래 전 읽었던 그 책은 가끔씩 나를 옥죄이곤 했었다.
마치 꿈속까지 따라와 괴롭히던 학창시절 아쉬운 기억처럼.
여고 1학년, 꿈에 부풀어 첫 학기를 시작했다.
종로 2가에서 내려 화신백화점 앞을 지나서 안국동과 견지동 사이 횡단보도를 건넌다.
3월 이른 봄 날씨는 알싸하고 매웠다.
새로 맞춘 교복은 어색했고 빳빳하게 풀 먹인 하얀 칼라는 불편했다.
중동고 남학생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골목을 지나
수송동 70번지의 여학교 교문을 들어선다.
도심 안 메마른 풍경의 교정이 눈앞에 나타났다.
내가 꿈꾸던 여학교와는 너무도 다른 그림.
낡은 벽돌 건물 한 채와 회색 콘크리트의 밋밋한 교사 두 채
휑한 운동장 너머의 교정은 참 허술해 보였다.
교실에서 만난 연로한 담임선생님의 힘없는 목소리는 나를 더 우울하게 했다.
희망에 부풀어 시작한 첫 등교였는데 무엇 하나 만족스러운 게 없었다.
왠지 즐거울 일이라곤 없을 것 같은 불안감
한동안 나의 느낌은 적중했던 것 같다.
매 수업마다 들어오시는 학과목선생님들은 모두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었다.
어디 한구석 생기라곤 도무지 느낄 수 없었던 봄이다.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 건 도서반 활동이었다.
수업을 마치고 넓은 도서관을 번갈아가며 당번을 서는 게 좋았다.
누렇게 변색된 책일망정 좋아하는 책들을 원 없이 만지고 볼 수 있었으니
충분히 가슴 뛸만한 일이었다.
학기가 시작되고 한 달쯤 지날 무렵이던가.
사서선생님이 도서반 아이들에게 책을 지정해서 읽게 하셨다.
그때 정해주신 첫 번째 책이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였다.
아마 그 분은 우리 모두를 민족주의자로 만들고 싶으셨던 모양이다.
나는 그 책 서두 부분을 몇 페이지 읽다가 덮고 말았다.
끝내 다 읽지 못했다.
읽은 부분의 내용조차도 자세히 기억하지 못한다.
정작 그 소설의 진가는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재독작가인 이미륵이 쓴 독일어 소설이란 것과
전혜린의 번역으로 한국에 알려지게 된 책이란 것까지.
그 소설은 1959년 처음 번역되어 알려지기 시작한 책이었다.
1970년대에 중판이 나올 만큼 많이 읽히기도 한 작품이다.
독일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린 명작으로 인정받는 소설이다.
1946년 발표 당시 독일에서도 많은 찬사를 받았던
예술성 짙은 작품임에 분명한 그 소설이 왜 잘 읽히지 않았는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숙제처럼 읽어야 하는 것에 대한 괜한 반항심일 수도 있겠고
그 나이 또래의 감성과 잘 맞지 않아서일 수도 있겠다.
우리 중 누구도 선생님의 의도대로 따른 아이는 없었다.
그저 제 멋대로 손에 잡히는 대로 말랑말랑한 내용의 책들을 읽곤 했다.
지금껏 기억에 남은 책은 별로 없는 걸로 보아 쓸데없이 시간만 허송한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참 희한한 건
제대로 읽지도 않았던 ‘압록강은 흐른다’가 아직껏 마음속에 남아있다는 것이다.
끝내지 못한 숙제로 맘 한구석에 계속 자리하고 있다는 게 참 이상하다.
어쩌면 몇 페이지 읽는 동안 각인된 어떤 정서가 나를 꽉 붙들고 있는 건 아닐까.
잊힐 만 하면 생각나는 이미륵 그 소설
이야기 속의 압록강이 아직 내 마음 안에서 흐르고 있는 건 아닌지.
작은 실마리 하나가 지나간 시간들을 내 앞에 풀어놓는다.
이미륵이 상실감으로 고향 압록강을 떠올리듯 나의 여고시절은 상실감으로 가득하다.
메마른 풍경의 여학교는 졸업하던 해를 마지막으로 종로에서 도곡동으로 옮겨갔다.
짧은 3년 즐거운 추억보단 우울함이 더 많았던 시절.
성장통과는 조금 다른 종류의 아픔들이 늘 주변을 맴돌았다.
결코 그리움으로만 돌아봐지지 않는 날들이다.
그럼에도 가끔 돌아보게 되는 건 그 귀한 날들을 허투루 보낸 아쉬움 탓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