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한국의 길

정동진 가는 기차

정진숙 2017. 2. 15. 11:43

 

 

 

 

 

 

서울에서 세 시간이면 갈 수 있는 정동진 길을

다섯 시간 반에 걸쳐 기차를 타고간다.

강릉 안인진, 괘방산에 있는 임해휴양림으로 가는 길이다.

몇 해 전 백년 만의 폭설이 내리던 날

묵호 가던 날의 추억을 떠올리며 마음 들떠서 나섰다.

온 세상이 하얀 설국이던 그때와는 다르게

눈 내린 풍경은 만나기 힘들었다.

 

제천을 지나 영월로 향하며 선로는 강원도로 접어든다.

예미, 자미원, 민둥산, 사북, 고한, 추전, 태백,

도계, 신기, 미로, 도경리, 옥계...

정겨운 이름의 고장들이 창밖을 스치고 지나간다.

그새 차창 밖 풍경은 많이 달라졌다.

몇 해 전만 해도 통리에서 도계 가는 길엔

스위치백 구간이 있었다.

흥전역에서 나한정역까지 지그재그로 역주행하며

경사진 철길을 달렸던 신기한 장면이 생각난다.

기찻길 옆을 스쳐지나는 하얗게 눈 덮인 태백산맥의 산간마을들이

낯선 이국풍경처럼 아름다웠던 기억이 떠오른다.

 

강릉역이 일시 패쇄되고

현재 중앙선, 영동선의 종착역은 정동진역이 되었다.

오는 동안 보았던 옛 길과는 사뭇 달라진 철길

저만치 선로 밖에 비켜나 외떨어진 간이역도 있었고

새로 생긴 역사도 몇 군데 있었다.

오래 전 묵호 이모님이 서울로 다니러 오실 때

침대칸이 있는 밤기차를 8시간씩 타던 시절과는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이 겨울 푸른 바닷가 옆 작은 정동진역에

여섯량의 긴 열차에서 많은 사람들이 내린다.

예전 간이역이었던 그때가 언제던가 싶다.

철길 너머로 새파란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이 아득하게 펼쳐진다.

사람들의 아름다운 미소가 있는 곳, 그대는 정동진...

이런 문구가 새겨진 앙증맞은 석조상이 여행객들을 반긴다.

키 작은 소나무가 선 기찻길 옆 바다

정동진역에선 철길 너머 짙푸른 수평선을 바라보며

누구라도 아름다운 미소를 짓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