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덕여관의 세 여인
충남 예산 덕숭산 자락에는 고찰 수덕사가 자리하고 있다. 수덕사의 여승이란 노래로 더욱 알려진 이 사찰에는 비구니 선원 견성암이 있다. 일주문 바로 왼쪽에는 초가집 한 채가 자리한다. 수덕여관이다. 한때는 이 나라의 내로라하는 시인, 화가, 묵객들이 드나들던 이 여관은 주인도 객도 모두 떠나고 전시공간이 되어 나그네를 맞이하고 있다. 안마당으로 오르는 돌계단 옆에 '수덕여관'이라는 네 글자가 새겨진 자연석이 놓여있다. 이응로 화백의 글씨다.
수덕사로 출가하기 위해 찾아온 여인들이 주로 머물던 이 여관은 일엽스님을 찾아온 나혜석이 삼년간 머문 것으로 유명하다. 그 무렵 그녀에게 그림을 배우기 위해 많은 제자들이 찾아왔다. 그중에 한 사람이 이응로화백이다. 고암 이응로화백은 스승으로서의 나혜석에 대한 기억이 애틋했다. 그녀의 파리 유학기에 매료되어 늘 파리를 동경하였다고 한다. 나혜석이 공주 마곡사로 떠나고 이응로화백은 스승과의 추억이 깃든 이 여관을 1944년 매입하여 1959년 오래도록 그리던 파리로 떠나기 전까지 이곳에서 작품 활동을 했다.
수덕여관의 역사를 말하자면 이 세 여인을 빼놓을 수 없다. 김일엽과 나혜석, 박귀희여사가 그 주인공이다.
본명이 김원주인 일엽스님은 한때 시대를 앞서가던 신여성이었다. 두 번의 이혼과 자유연애로 당대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여성문인이었다. 일엽이라는 필명은 일본 유학시절 그녀의 맑은 수필에 반했던 이광수가 지어준 이름이다. 일엽스님이 출가하여 수덕사 견성암에 머물 때 출가 전 낳은 열세 살 아들이 엄마 품이 그리워 찾아왔다. 그때마다 그녀는 어머니라 부르지 말고 스님이라 부르라며 속세의 정을 매정하게 뿌리치며 아들을 돌려보내곤 했다.
낙심하여 내려온 일엽의 아들을 수덕여관에 머물던 친구인 나혜석이 따뜻하게 품어 보살펴 주었다고 한다. 아들 일당 김태신은 화가로도 이름을 떨쳤고 어머니를 따라 불자가 되어 직시사 중암에서 최근까지 불도에 정진하였다.
불꽃같이 살다간 비운의 화가 나혜석
"임자는 중노릇 할 사람이 아니야." 세파에 휩쓸려 지친 몸을 이끌고 친구 김일엽이 수도생활을 하고 있는 수덕사를 찾은 나혜석에게 만공선사가 꾸짖듯이 한 말이다. 만공선사가 누구인가? 1871년 정읍에서 태어나 태허스님을 은사로 당대의 큰스님 경허를 계사로 사미계를 받아 득도하고 근대 선(禪)불교를 중흥시킨 큰스님이다. 이러한 스님으로부터 중 되는 것을 거절당했으니 나혜석의 발걸음은 무거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이정근기자 기사인용). 이후 삼년을 수덕여관에 머물며 출가를 청했지만 스님이 되지는 못하였다.
김일엽과 동갑내기인 나혜석은 우리 근대사 신여성의 대표 격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 서양화가인 나혜석은 최린과의 스캔들로 김우영과 이혼한 뒤 친구인 일엽스님이 있는 수덕사의 이 여관에서 머물렀다. 천재적인 예술성과 외모를 겸비한 나혜석은 당시 가부장적인 한국사회에서 여성들의 사회활동에 선구자 역할을 해왔다.
수덕여관의 주인이자 화가 이응로의 아내 박귀희
1944년 남편인 고암 이응로 화백이 이 여관을 사들이면서 여관의 운영을 부인인 박귀희씨가 맡게 되었다. 하지만 이응로 화백은 어린제자 박인경과 눈이 맞아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난다. 남편의 요구로 이혼한 후, 박귀희는 혼자 여관을 운영하게 된다.
1967년 동백림 사건으로 남편 이응로가 옥고를 치르고 몸을 추스르기 위해 수덕여관으로 돌아온다. 옥바라지와 이응로를 돌본 것은 조강지처였던 박귀희였다. 그러나 이응로는 몸이 회복되자 다시 파리로 돌아가 버린다. 수덕여관에 머물던 1969년 이응로가 바위에 암각화를 새긴 작품이 마당 한켠에 아직도 남아있다. 이응로가 떠나 버린 후에도 박귀희는 이곳 수덕여관을 지키고 살다가 2001년 숨을 거둔다.
주인이 떠난 수덕여관은 십여 년 동안을 폐허로 방치되어 있었다. 최근 복원하여 문화전시공간으로 일반에 공개하며 수덕여관의 옛 사연을 다시 되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여자의 일생이 어느 시절인들 평안한 날이 있었을까만 세 여인들이 살아온 날들은 그 누구보다 파란만장하다.
수덕사의 여승을 부른 가수 송춘희씨는 이 노래를 인연으로 기독교에서 개종하여 독실한 불자가 되었다고 한다. 일엽스님 역시 목사의 딸로 태어나 불교에 귀의 했으니 우연인 듯 보이는 두 사람의 인연도 특별한 것 같다.
이십대 중반 친구 둘과 다녀온 수덕사. 그땐 이 곳에 깃든 이런 사연들도 모른 채 스치듯 지나왔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하나둘 다시 알아가는 옛 이야기들. 그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모두 떠나간, 지금의 수덕사와 수덕여관이 어떤 풍경으로 변해 있을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