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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 오늘

정진숙 2017. 6. 5. 10:53

너를 잘 안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

나를 잘 알기도 얼마나 힘든 일인데

하물며 너를 잘 안다니.

그에게 누군가가 그리 말한다면 쉽게 수긍할 수 있을까.

 

어떤 이는 이런 말을 했다.

궁상스런 글 소재에서 그만 벗어날 때가 되지 않았냐고.

글쎄다, 구체적으로 무얼 지적하는 건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못 먹고 못 살던 옛날을 말하는 게 그렇다는 건가.

그걸 쓴 글이 그렇다는 건가.

 

그런 말을 하는 이는 그리 말할 충분한 자격은 있는가.

어쩌면 내 자격지심에 그 말이 고깝게 들렸을 수도 있겠다.

그렇다하더라도 동의하고 싶진 않다.

남의 눈에 궁상스러워 보일지 모르는 나의 모든 걸 사랑하기에

내가 살아온 날로부터 벗어나고 싶지 않다.

오늘의 나를 이룬 지난 것들을 외면한다는 건 곧 나를 부정하는 일이니까.

내게 있었던 일들은 시간이 흐른다고 소멸되는 게 아니다.

차곡차곡 쌓여서 어느 순간 내 삶의 결이 되고 밑그림이 된다.

 

어제가 없으면 오늘도 없다.

누군가의 눈에 궁상스런 어제와 오늘이

결코 부끄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