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지난 가을 석모도
정진숙
2017. 7. 4. 14:22
'바람 속으로 걸어갔어요
이른 아침에 그 찻집
마른 꽃 걸린 창가에 앉아 외로움을 마셔요'
늦가을 즈음 찾은 석모도 토담집은
조용필의 노래 그 겨울의 찻집을 떠올리게 했다.
마른 꽃 걸린 넓은 통창이
잿빛 서해바다를 마주하고 있었다.
탈색된 햇살 아래
뜨락의 가을꽃들은 마지막 꽃을 피우고 있었다.
살다가 한두 번 쯤
멍하니 보낼 하루가 필요한 순간
이런 외딴 곳에 무심히 앉아
삶과 무관한 시간을 잠시 허송할 수 있었으면.
지금은 그곳이 어찌 변했을까.
앞으로는 또 어떤 모습으로 달라질지.
일몰의 섬 석모도
그 섬으로 오가던 느린 뱃길위로
이제 튼실한 다리가 놓였으니
밀물처럼 밀려드는 사람들 발길에
썰물처럼 한가로움은 빠져나가지 않을까.
마른 꽃 걸린 그 창가엔
도회의 세련된 오브제가 걸리지 않을까.
마음 다급해진다.
지난 가을 마주한 풍경이 모두 사그라지기 전
얼른 달려가 만나보고 싶다.
토담마을 밴댕이회 한 점에
알싸한 인삼동동주 한 사발로
변해가는 모든 것을 위해
축배를 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