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이란 시간
언젠가 지인의 아들 결혼식이 있어 신촌을 가게 되었다. 부랴부랴 서둘러 가는데 서울역에서 환승하다가 일이 벌어졌다. 경의선으로 갈아타고 홍대입구역에서 2호선을 탈 예정이었다. 그런데 도무지 환승통로가 눈에 띄질 않는다. 어찌하다 1번 출구 방향으로 나가서 환승하라는 안내문을 발견하고 서둘러 개찰구를 빠져나왔다. 바깥으로 나가서 갈아타라는 게 내심 못미덥더니 아니나 다를까 문산 방향 경의선 쪽으로 가는 길 안내였다. 다시 되돌아가기도 그렇고 기차에 올라 좌석에 앉아 있었다.
시간도 다급한 판에 출발하기까지 이십여 분을 더 기다렸다. 그리고 도착한 신촌역, 너무도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 그나마 옛 건물을 옮겨 보존하고 그 뒤에 새 역사를 지은 것이 다행스러웠다. 서울시 근대문화재 136호, 젊음의 꿈과 교외선 통기타의 낭만이 머물던 옛 신촌역은 지나간 청춘의 그림자마냥 그렇게 유물이 되어 쓸쓸하게 남아 있었다.
그제는 약속한 시간이 여유가 있어 지하철 신촌역에서 연대 방향으로 걸어가보았다. 옛 신촌역 왼편으로 연대 앞 굴다리 근처엔 허름한 막걸리집이 여럿 있었다. 낡은 선술집에서 소리 높여 입영전야를 불러대던 그날들이 과연 있기나 했던 건지. 그때 그 자리의 풍경은 꿈속의 풍경인 듯 말끔히 사라지고 없었다. 그때 함께한 이들이 내 삶에서 사라진 것처럼 그렇게.
그 시절을 함께한 또래들은 대개가 우울했다. 심각한 표정으로 너무 진지하게 이십대를 보냈던 것 같다. 옛 생각에 젖으며 발길을 서강대 쪽으로 돌린다. 어수룩한 교문은 여전했다. 비탈진 교정을 오르면 언덕 위에 도서관이 있었는데 아직 그대로일까. 5월 풀밭에 앉아 고개를 갸웃대며 무언가에 열중했던 서강대 친구들. 세상 좋아져서 그네들 소식을 사이버 상에서 가끔 엿보곤 한다. 다들 잘 살고 있었다.
청춘이란 시기는 모두가 한번은 통과하는 시간일 터. 그러나 그 시간을 살아가는 그 순간의 모습은 제각각이다. 신촌이란 공간을 누비고 있는 지금 아이들의 얼굴은 한결같이 가볍고 활기차다. 이리 좋은 시절을 나는 왜 누릴 줄도 모른 채 우울하게 흘려보냈을까. 기차가 달리던 경의선철길이 숲길 공원으로 변해갈 동안 나는 무얼 바라고 무얼 이루며 살아온 걸까. 그저 시간이 가기만을 바라고 바라며 세월을 허송했으니 후회막급이다.
지나간 젊음의 다른 이름 신촌. 연민 가득한 신촌이란 곳은 공간의 의미가 아니라 내겐 시간의 의미로 인지되는 추억이다. 아무 소용없어진 그 추억을 더듬거리며 철길 옆의 집들이 대로변으로 나앉은 현재와 간신히 남은 과거가 혼재된 경의선 숲길을 혼자 걸었다. 연대 앞에서 시작해 서강대로, 그리고 홍대 앞으로. 해거름녘 동교동 김대중도서관 골목길을 나서며 연민의 어둑한 뒤안길을 황급히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