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날의 섬, 신시모도
막연하던 환상을 깨는데 까지는 이틀이면 족했다.
살갗에 꽂히듯 내리쬐는 강렬한 태양
습기 머금은 바닷바람, 후덥지근하게 끈적이는 공기
한여름날의 섬은 그림 같은 낙원이 아니었다.
새벽이라고 나을 것도 없었고 밤이라고 더 나을 것도 없었다.
무더위와 날벌레의 무차별 공습에 말 그대로 녹다운이다.
밖으로 나가지 말고 민박집에서 에어컨이나 쏘이는 게 피서라며 헛웃음.
섬의 풍경은 단조롭기도 하고 다채롭기도 하다.
정지된 것처럼 조용한 시도리 마을은 바라보기조차 심심할 지경이다.
그럼에도 어느 하나 흥미롭지 않은 게 없다.
허물어지는 담장을 타고 오르는 호박넝쿨과 탐스런 능소화 줄기가
길가의 진홍빛 백일홍과 빨갛게 익어가는 해당화 열매가
멈춘 듯이 보이는 풍경 안에서 무성하게 생명을 키워가고 있다.
제 맘대로 돋아난 통제 불능의 풀들이 점령한 섬은
파랑과 초록과 주황의 생생한 색감들로 서해바다와 어우러져 최상의 그림을 그려낸다.
노루메기해변으로 해넘이를 보러갔다.
모도로 가는 길목, 썰물 지는 연도교 너머로 붉은 빛이 어린다.
그런데 갯벌에서 편안히 일몰을 바라보려던 건 계산 착오였다.
바로 앞의 산이 완벽한 해넘이를 방해하고 있었다.
아쉬운 대로 만족할 수밖에.
고요한 풍경을 잠시라도 흔드는 건 코앞에서 날아가는 비행기다.
모도 위 하늘 길로 여객기들이 수도 없이 지나간다.
지구별 어디에선가 날아와 바다 건너로 보이는 인천공항을 향해 연신 날아가고 있다.
그렇게나 많은 점보기가 모두 착륙할 수 있을까 괜한 의문이 든다.
지독한 무더위에 섬에 대한 환상은 깨졌지만
섬과 조금 가까워진 이틀이다.
두 번째로 찾아온 신도 시도 모도
길섶의 풀과 나무들, 소금기 머금은 바람과 심심한 바다가 정겨워진다.
봄의 나긋하던 풍경과는 전혀 다른 한여름의 뜨거운 풍경 속에서
섬에서의 삶이 녹녹치 않음을 체득하고 간다.
마음 느슨해져 살아감이 심드렁해진 어느 날
다시 이 풍경 안으로 성큼 들어서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