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남은 장소들

시도리 추장민박

정진숙 2017. 8. 6. 08:54

 

 

 

 

 

 

 

 

 

 

 

 

한때는 여행지의 예쁜 팬션을 찾아 다니곤 했다.

일상을 벗어난 곳에서 맛보는 여기가 아닌 저기에 대한 대리만족

그런 비스무리한 환타지가 여행지의 팬션에는 있었다.

어느 새 현실적으로 변해서인지

이제는 소꼽장난 하듯 아기자기하게 꾸며논 집들엔 잘 끌리질 않는다.

어차피 내 것이 아닌 것에 대한 거리감도 한몫하고.

 

이번에 다녀온 신시모도에도 잘 꾸며놓은 팬션이 많았다.

이리저리 검색해보았지만 딱히 내키는 데가 없었다.

그러다 찾아낸 곳이 추장민박이다.

왠지 정글 숲을 헤치고 가야 나타날 것 같은 민박집

왜 추장이라 이름 지었을까.

 

몇 군데 블로그의 후기를 살펴본 후 주인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초로의 아저씨 정도로 짐작되는 느긋한 음성이 전해진다.

방 두개를 예약하고 예약금을 보낼테니 계좌번호를 문자로 찍어주시라 말했다.

주인장 왈, 휴대폰이 바다물에 빠져 잘 안되고 문자 같은 거 잘 못하니까 받아 적으란다.

어, 이건 뭐지?

너무 당연하게 여기던 게 안 되는 분도 있구나 싶어 순간 당황했다.

 

신도선착장에서 버스를 타고 기사님께 추장민박에 가니 근처에 내려달라면

가까운 곳에 내려준다고 쓴 어떤 블로거가 있었다.

설마 그럴까? 진짜 그랬다.

기사님은 친절하게 가까운 곳에 버스를 세워주신다.

저기 언덕에 보이는 곳이니 파란 지붕집 옆으로 올라가라는 부연설명까지 해주셨다.

 

옹진군의 삼형제 섬 신시모도

택시 한대와 버스 한대가 대중교통의 전부인 섬이다.

그래도 불편하지 않은 섬

걷다가 손 흔들면 버스를 세워주고 내려달라면 원하는 아무데서나 세워주고

온 동네 사람들이 서로 알고 지낼 것 같은 이 섬은 별천지였다.

물 빠진 갯벌을 지그시 바라보며 신도를 지나 시도리 추장민박에 도착했다.

 

곱게 나이 든 안주인이 맞아주셨다.

이웃사촌이라 이웃을 칭하던 시절의 맘씨 좋은 옆집 아주머니처럼 푸근한 인상이다.

야트막한 언덕 아래로 마을 전경이 내려다보인다.

풀냄새 시골냄새에 절로 여유로워진 오후, 눈에 보이는 세상만사가 편안하다.

 

아주머니는 텃밭에서 갓따온 상추, 깻잎, 고추를 깨끗이 씻어 채반에 담아오셨다.

잠시 후에는 부추 겉절이를 큰 접시에 수북히 담아 건네주신다.

이따 저녁엔 바지락 넣고 부추전을 맛나게 해주시겠다며 우선 고기 구워서 곁들여 먹으라고.

이 무슨 황송한 일이.

여름 성수기에 바가지요금 없이 묵은 것만도 고마운데 대접이 너무 융숭하다.

검색하며 보았던 글들이 절대 빈말이 아니었다.

 

저녁이 다 되어 들어오신 주인장이 우리 가족과 금세 어울리신다.

무의도에서 횟집을 하다 시도리로 옮겨왔다며 십여 년 넘게 민박을 운영한 일화를 들려주신다.

사람들과 허물없이 잘 어울리는 게 쉬운 일은 아닌데 이 분들은 타고나신 것 같다.

덕분에 마음 훈훈한 이틀을 보내고 돌아왔다.

시도리 추장민박, 생각만해도 푸근해지는 섬 하나를 발견한 기분이다.

 

<주소; 인천광역시 옹진군 북도면 시도로104번길 37-14 연락처; 032-746-78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