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신중했던 두 살 아이
집을 옮기며 아이의 잔병치레가 잦아졌다. 도시 외곽의 한갓진 동네에서 살다가 대로변 골목 안 주택으로 환경이 바뀌자 아이가 반응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한동안 미열과 감기를 늘 달고 살았다. 아이 돌보느라 시누이께서 제일 고생이 많으셨다. 몇 차례의 병치레를 하는 사이 아이도 제법 단단해졌다.
휴일이면 종일 아들에게 붙들려 살았다. 한 주내내 힘들게 일한 터라 푹 쉬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엄마에 대한 밀린 사랑을 한꺼번에 보상 받으려는 듯 아이가 잠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나또한 미안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만회해보려 늘 애썼던 것 같다.
이 무렵이 제일 고달팠던 시기였다. 엄마로서 주부로서 직장인으로서, 내게 주어진 1인 3역을 완벽하게 잘 해내고픈 의욕은 수시로 좌절되곤 했다. 중풍으로 누워계신 시어머니는 시어머니대로, 남편은 남편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주어진 모든 상황이 버겁고 힘들었다.
퇴근 후 집에 도착하면 할 일이 산더미였다. 방안 가득 어지러진 아이 장난감. 세탁바구니에 가득 쌓인 어머니 옷가지와 이불 빨래. 늦은 시간 남편의 저녁식사를 챙겨야 하는 일. 도무지 사는 게 즐겁지가 않았다. 그 또한 다 지나가리라는 만고의 진리를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맘 편한 나날을 보냈을 텐데 지나고 나니 바보 같은 나였음을 알게 된다.
엄마의 고단함과는 별개로 아이는 탈없이 잘 자랐다. 조금 걱정 스러웠던 건 말문이 늦게 트인 거였다. 첫 돌이 한참 지나고도 짧은 단어만 몇 마디 할 뿐 제대로 된 문장을 표현하지 못했다. 엄마가 옆에 같이 있어주지 못해서 그런가 은근히 불안했다. 아이에게 열심히 말을 붙이고 책도 읽어주며 불안감을 다스렸다. 호기심 많은 아이는 손가락으로 궁금한 것들을 가리키며 끊임없이 물었다. 달력의 숫자를 가리키면 한자 한자 읽어주고 책 속의 단어를 짚으면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읽어주었다.
하루는 큰 누이댁 조카가 참 신기하다는 듯이 내게 말했다. 호주니가 말을 하는데 너무 놀랐다는 것이다. 두루뭉실 말하는 게 아니라 조사와 어미를 잘 가려서 문장을 정확하게 표현하더라며 고만한 아기가 그렇게 말하는 건 처음 본다고 똑똑한 아이 같다는 것이다. 신기한 건 나였다. 진짜 그랬냐며 몇 번을 되물었다. 기다리면 저절로 될 것을 쓸데없는 걱정을 한 셈이다. 마음 조급한 건 엄마였고 아이는 말문을 트기까지 제 나름 신중했던 모양이다.
그렇게 한 해를 기특하게 자란 호주니는 미운 세 살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