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등병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다목리 가는 길 (첫 면회기) / 2010.11.6

정진숙 2010. 11. 8. 11:53

 

기다리는 아들 생각에 새벽 5시부터 일어나 서둘렀습니다.
포천 백운계곡을 지나 화천 사창리로 넘어가는 쉼터에 도착하니 8시 반이더군요.
간단한 요기로 아침을 대신하고 안개가 자욱한 광덕계곡을 지났습니다.
사창리 시내를 거쳐 김화 다목리 방향 이정표를 따라 10분 정도 더 갔습니다.
감성마을 입구가 보이고 잠시 후 육단리와 봉오리로 길이 갈라집니다.
오른쪽 봉오리로 우회전 하면 92대대로 가는 길입니다.
왼쪽 육단리 방향의 수피령길로 직진하면 대성산 회관이구요.
부대 위치를 물어볼 겸 대성산 회관으로 먼저 들르는 바람에 다목리에서 한참 헤맸습니다.
참고로 부대 이름만 알고는 찾기 힘드니까 숫자로 표기된 주소를 꼭 알아야 돼요.
울 아들이 미리 일러주지 않아서 조금 애먹었어요.
다목리 삼거리에서 우회전 해 왼편의 계곡을 끼고 쭉 내려가면 왼쪽 도로 옆에 푯말이 있고 바로 부대 입구가 나옵니다.

위병소에서 면회 신청 후 잠시 기다리면 아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9시 50분쯤 도착해 신청하고 두근거리며 기다리는데 저만치서 아들이 보이더군요.
어찌나 반갑던지요.
선임병과 느긋하게 걸어오며 아들이 환하게 웃네요.
얼른 달려가서 얼굴을 쓰다듬고 등을 토닥거리며 한참을 쳐다봤습니다.
그 마음, 그 느낌 겪으신 분들은 모두 아시겠지요.
외출 보고하는 행동에 군인임이 그대로 묻어나더군요.
선임병한테 잘 부탁한다는 인사를 하고 간단하게 보고 마친 아들을 데리고 첫 면박을 나왔습니다.
아들의 모습이 흐뭇하면서 가슴 한구석이 아릿해졌어요.
두 달 보름의 시간이 널 이만큼 달라지게 했구나, 고생 많았다, 참 대견하다 뭐 이런 생각들이 오가면서요.

 

다목리는 길 양편으로 백여미터가 시가지의 전부라 아주 작은 동네입니다.
위수지역인 사창리는 장이 서는 곳이라 조금 더 크긴해도 좁은 동네인 건 마찬가지구요.
30여분 돌다보면 동네 한바퀴 다 돌게 되구요.
아까 만난 사람들 또 만나구요.
하루에도 그 사람들 두어 번씩 더 만나게 되는 참 재밌는 곳이에요.
한마디로 심심하기 짝이 없다는 말이지요.
토마토 공원에 차를 세우고 이리저리 다녀보지만 이틀을 보내기엔 턱없이 좁은 사창리.

지금 필요한 건! 심심하지 않기랍니다.

다목리 대성산 회관에 숙소를 정해 놓은 터라 점심 먹고 이동하기로 하고 사창리 시가지를 둘러보지만 딱히 내키는 곳은 없어요.
그나마 우리가 들른 곳은 미리 정보를 얻어 찾아가서인지 음식 맛이 다 좋았어요.
토마토 공원 맞은 편 큰집 가마솥 설렁탕의 모듬 수육, 대성산 회관의 생삼겹살, 대성각의 매콤 탕수육 모두 만족스러웠습니다.
PC방은 자리 나기가 어려우니까 여러 곳 둘러보셔야 돼요.
가는 곳마다 군인으로 꽉찬 PC방 굉장히 놀라웠습니다.

그리고 가실 때 소일거리 준비하셔요.

아들이 좋아하는 책이나 게임기등등, 전 부탁 받은 환타지 소설 가지고 갔어요.

 

부모님 면회 오면 자는 거 먹는 것이 전부라고 하더군요.

안타깝고 아쉬운 첫 면회였습니다.

정말 할 일이 마땅치 않아 좁은 시가지를 뱅뱅 돌았어요.

계곡 따라 드라이브도 하고, 나중엔 이외수님이 사는 감성 마을에도 가고, 그렇게 결코 짧지 않았던 이틀이 지나갔습니다.
지루하지만 아까운 시간이 다 갔다고 아들이 표현하더군요.
참 무덤덤한 녀석인데 부대 있을 땐 모르겠더니 막상 들어가려니까 싫다네요.
왜 안그렇겠어요. 아직은 모두가 저보다 선임인데 당연히 불편하겠지요.
지루해도 지나가는 이틀처럼 시간은 흐르는 거다, 조금 참고 있으면 일병 되고 상병 되는 거다, 이왕 겪는 일 받아들이고 즐겨라,

힘내라며 다독이니까 잘 알고 있다며 끄덕이네요.
답답해서 투정 한번 부려보는 거란 생각이 들다가도 마음이 짠했습니다.

다들 그러면서 성장하는 거겠지요.
세상이 저 자라온 시간만큼 녹녹하지 않다는 걸 점점 깨달아 가는 거겠지요.
부대끼며 지내는 이 순간이 네가 살아 갈 힘을 기르는 소중한 시간이라고 믿으라 했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아들을 믿습니다.
남은 19개월 후엔 당당하게 앞을 향해 나갈 수 있는 한 인간으로 성장할 거라 믿어요.

 

다목마트 앞에서 부대로 가는 셔틀버스를 기다리며 강원도의 추위를 같이 느꼈습니다.
서늘한 밤 공기지만 달콤하더군요.
고통만큼 인간을 성숙하게 하는 게 있겠습니까.
한 무리로 서있는 모든 아들들이 대견해 보였습니다.
군대에서 보내는 2년을 몸과 마음을 단련시킬 수 있는 기회로 여긴다면 감사한 시간이지요.
웃으며 손을 흔드는 아들과 환한 미소로 헤어졌습니다.
돌아오는 길은 지난 여름 102보충대에 젖먹이 떼어놓고 오던 심정과는 달랐습니다.
너무 기특하게 잘 적응한 아들의 모습에 마음 든든하게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내년 1월, 첫 휴가 나올 멋진 모습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