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충혼비로 만난 큰아버지

정진숙 2022. 6. 2. 09:29

여름 재킷을 정갈하게 차려입은 아버지는 동작동 현충원 정문 앞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해마다 유월이면 친정아버지는 이곳을 다녀가시곤 했다. 지금은 성년이 된 어린 장조카의 손을 잡고서 혹시나 하고 전사한 형님의 이름자를 찾으러 다니신 것이다.

바로 위의 형님은 6.25 전쟁 때 이병의 신분으로 전사하셨다. 아버지 나이 열네 살에 헤어져 가슴에 묻힌 형님. 여태 유해조차 찾지 못한 채 함자라도 찾을 수 있을까 매년 기념비에 새겨진 수많은 이름들을 하나하나 훑으며 살펴 오신 것이다. 오랜 정성이 통했는지 몇 해 전 형님의 존함이 새겨진 비문의 위치를 찾으셨다. 얼마나 반갑고 비통했을까. 스무 살 갓 넘은 청년이었던 형님을 팔순이 다 된 아우가 만난 그때의 심정이. 명절날 그 이야기를 들려주실 적에 가슴 먹먹해지던 생각이 난다. 여러 해를 다녀가실 동안 한 번도 동행하지 못했으니 너무 무정한 딸이었다.

충혼탑 뒤에 자리한 위령비 16-4, 미발굴 전사자 십이만 이천여명 중 삼촌의 함자인 정자 준자 식자가 새겨진 기념비의 위치다. 이름 세 글자로 처음 뵌 큰아버지였다. 가지고 간 소주를 종이컵에 조용히 부어 기념비 앞에 놓고 맨 바닥에 엎드려 절을 올리신 아버지는 목 메인 음성으로 나를 소개하셨다. 형님, 올해는 큰딸 진숙이 내외와 같이 왔습니다, 하시며. 그 옆에서 나는 가만히 눈물을 훔쳤다.

어느 해 사월 벚꽃 만개한 무렵 연분홍 꽃비 하염없이 흩날리던 오후의 기억이 떠오른다. 능수 벚꽃이 유난히 해사한 길을 걸으며 마음 차분해지는 느낌이었다. 현충원으로 참배가 아닌 꽃구경을 가다니 송구한 맘에 조심스레 걸었던 것 같다.

그해 봄 순국 영령의 묘비 가지런한 언덕 아래 소풍 나온 유치원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가득했다. 봄날의 평화로운 나들이 풍경. 아마도 이런 평범한 일상을 우리 모두가 무심히 누릴 수 있도록 호국의 영웅들이 온 생명 바쳐 나라를 지켜낸 건 아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월엔 꽃구경 말고 아버지와 함께 큰아버지를 찾아봬야겠다, 마음먹고는 실행하지 못하고 서너 해가 지나갔다. 작년 현충일 첫 걸음을 했으니 올해도 아버지와 함께 찾아뵐 예정이다. 그리고 아버지 떠나신 후에는 내가 대신해서 매년 찾아뵈리라. 목숨 바쳐 이 나라를 지킨 이 언덕의 순국 용사들께도 경건하게 감사의 참배를 올리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