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 카슨 매컬러스
공경희, 카슨매컬러스 | 문학세계사 | 2005/09/22
제목과 잘 어우러진 회색빛 표지 그림이 눈길을 끈다.
1917년생인 카슨 매컬러스는 23살 되던 해에 이 소설을 발표하고 뉴욕타임지가 호평하는 스타가 되었다. 미국에서의 선풍적인 인기에 비하면 작품의 출중함에도 불구하고 국내의 반응은 크게 좋지 않았던 듯하다.
책의 서두는 다소 설명적이라 밋밋하지만 2부가 시작되면서 등장인물들의 개성이 드러나고 점점 흥미로와진다. 오랜만에 기분좋은 설레임으로 소설을 읽는다. 위로와 평안을 꿈꾸는 외로운 영혼들의 이야기, 역자 공경희는 이렇게 옮긴 후기를 시작한다.
1930년대, 작가의 분신인 믹 켈리가 사는 미국 남부의 어느 마을에서의 이야기다. 이 동네에는 뉴욕 까페라는 식당이 있다. 24시간 영업하는 까페의 주인은 비프 브랜넌이다. 자식도 없이 아내 앨리스와 까페를 지키며 살아가지만 인간들을 관찰하고 타인의 삶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싶어한다.
까페의 손님인 귀머거리며 벙이리인 존 싱어, 급진적 사회 주의자 제이크 브라운트, 음악을 꿈꾸며 자기만의 세계를 키우는 믹 켈리, 흑인의 인권이 존중받는 날을 꿈꾸는 닥터 코펄랜드, 이들은 까페의 단골이거나 한 번이라도 들렀던 손님이다.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은 외로움의 울타리를 빠져나오려 발버둥치는 이 다섯 사람의 이야기다.
그들의 고립에는 개인적이거나 사회적인 여러 요인들이 섞여 있다. 심한 고독감으로 누군가 자신의 감정을 이해해 줄 사람과 소통하려 한다. 언제나 말쑥하고 단정한 지적인 모습의 싱어. 겉으로는 전혀 장애가 보이지 않는 듣지 못하고 말 못 하는 존 싱어에게 자신들의 외로운 영혼에 대해 털어놓는다. 그리고는 마음의 위로와 평안을 얻는다.
작가는 사람들이 스스로 어떤 원칙이나 신을 만들어 내려는 욕구를 갖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각자의 신에게서 무엇을 바라든 그건 스스로가 만든 환상에 불과하다. 이 소설에서는 싱어가 신으로 여겨지는 대상이다. 주인공들은 싱어가 무한한 지혜를 갖추고 있다고 믿고 유일하게 자신들을 이해해 주고 포용해 주는 존재라고 굳게 믿는다. 그는 아무 것도 모른 채 조용히 미소지으며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인데 말이다.
그들은 각자의 모습 그대로 싱어를 통하여 원하는 신을 그려낸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싱어는 친구인 그리스인 안토나 파울로스에게만 관심이 있다. 같은 장애를 지닌 이기적이고 게으른 파울로스는 식탐으로 인한 우울증으로 요양시설에 입원 중이다. 싱어는 친구를 현명하고 친절한 사람이라 믿으며 맹목적인 사랑을 품는다. 그리고 사람들이 자신을 찾아와 쏟아내는 외로움과 고통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하소연한다.
싱어 역시 친구를 통해 자신의 환상을 투영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모든 주인공은 스스로의 소망을 담아 대상을 바라보며 자신을 속이는 셈이다. 그들이 품은 소망은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꿈일 뿐이다. 파울로스의 죽음으로 절망에 빠진 싱어는 자살을 하고 그를 믿고 의지했던 사람들은 모두 혼돈에 빠지고 만다.
소설은 시작보다 결말 부분이 더 절망적이다. 하지만 열 네 살의 소녀 믹 켈리는 절망 속에서도 장래의 계획을 세운다. 생업을 위해 학교를 그만두고 잡화점의 점원으로 일하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자신을 위해 피아노를 살 돈을 모으기로 결심한다. 건조한 일상 속에서 믹이 음악을 향해 놓지 않는 꿈은 어두운 이 소설의 마지막을 희미하게 비춰 준다.
스물 세살의 나이로 쓴 작품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만큼 장면의 묘사들이 감각적이고 시적이며 깊이가 있다. 다양한 연령과 상황의 주인공들이 엮어 내는 그 많은 독백을 매컬러스는 어떻게 이끌어 냈을지 경이롭다. 아주 오래된 흑백 영화를 보고난 것처럼 착잡해지고 가슴이 아릿하다. 한편의 슬픈 영화처럼 아름다운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