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맛
마트에서 달걀을 사오는 날이면 습관처럼 꼭 몇 알을 삶곤 한다. 아마도 추억의 더께가 덧칠해진 그리움의 맛을 기대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삶은 달걀 한 알에는 따끈하고 부드러운 감촉과 함께 밀려오는 지나간 날의 기억과 가난한 엄마의 소박한 정이 아련하게 배어 있는 추억이 묻어있다. 흘러간 날들은 비록 배고픔의 고통일지라도 아름답다. 그리우면 그리운 대로 아프면 아픈 대로 힘겨운 날을 이기고 견뎌 낸 안도감 까지 보태져 그저 애틋하고 푸근하다.
아직 따끈한 달걀 껍질을 벗기며 아들에게 먹기를 권하였다. 반응이 영 시큰둥하다. 넌 삶은 달걀이 싫으냐고 물었더니 별로란다. 하기야 요즘처럼 입맛대로 식성대로 자극적인 먹거리가 지천인 세상에 덤덤한 이 맛이 그다지 입맛에 맞을 리는 없겠다. 예전에 누구랄 거 없이 모두가 배고프던 시절에는 일 년에 한두 번 소풍가는 날에나 톡 쏘는 사이다 한 병과 더불어 맛보던 별미건만, 이제는 그 만큼 세월이 좋아져서겠지.
달동네가 뭔지 모른다는 요즘 아이들, 부족함의 갈증이 사라진 대신 욕구의 절실함도 사라진 듯하다. 학용품 하나, 새 옷 한 벌, 운동화 한 켤레를 새로 사기 위해 몇 날 며칠을 부모님께 조르고 때 쓰던 기억이 지금의 아이들에겐 없다. 힘겹게 구하는 수고로움이 없으니 매사에 귀한 줄도 모른다. 쉽게 얻은 만큼 쉽사리 팽개치고 너무도 빨리 정을 뗀다. 풍족함 뒤에 가려져 간절함을 잃어버린 감성의 빈곤이 안타깝다. 몽당연필에 볼펜대를 꽂아 쓰고 다 쓴 공책을 지우개로 지워가며 다시 쓰던, 그 때 그 시절을 짐작이나 할런지.
아들 녀석이 초등학교 1학년일적 여름의 일이다. 일요일 아침 식전에 주섬주섬 장난감을 비닐봉투에 담아가지고 집을 나서려고 한다. 의아해진 나는 어딜 가느냐고 물었다. 금방 오겠다며 나간 녀석은 두 시가 다 되어서 땀을 뻘뻘 흘리며 들어온다. 밥도 안 먹고 여태껏 뭘 하고 온 거냐며 다그치니까 머뭇대며 하는 말이 가관이다. 장난감을 팔고 오는 길이란다. 맙소사, 어디서 그런 짓을 하고 온 거냐, 비싸게 산 장난감은 왜 판 거냐, 이렇게 늦게까지 배도 안고프더냐며 어이가 없어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녀석 왈, 사은품 장난감이랑 선물 받은 거만 팔았다며 외려 부루퉁하다. 자초지종을 들어 보니 시청(군포시) 앞 광장에서 벼룩시장이 열렸단다. 용돈벌이를 할 요량으로 실컷 가지고 놀아 싫증난 장난감을 팔고 그 돈으로 음료수 하나와 좋아하는 책 한권을 샀다는 것이다. 책은 어쨌느냐 물었더니 다 읽고 나서 조금 더 값을 쳐서 되팔고 오느라 늦었단다. 기가 막히다. 그런 장삿속을 어린 것이 어찌 알았을까.
그 다음 일요일엔 한 술 더 떠서 돗자리에 야쿠르트까지 챙겨 일찌감치 나서기에 서두르는 이유를 물었다. 늦으면 좋은 자리가 없다는 말에 피식 웃고 말았다. 더운 여름날 까맣게 그을린 얼굴이 안쓰러워 말리고 싶었지만 달동네가 뭐 하는 데냐고 묻던 일이 떠올랐다. 이만한 고생은 약이 되겠다는 생각에 얼른 들어오라고만 이르고 아이를 배웅했다.
그렇게 여름 내 몇 주를 들락거리다 급기야는 내가 선물로 받은 인형까지 가져다 팔고는 더 나를 것이 없었던지 제 풀에 그만두었다. 철없는 나이에 고생스럽기야 했겠지만 그때의 스스로 터득한 경험으로 아이는 용돈을 꼼꼼하게 아껴 쓰는 좋은 습관을 지니게 되었다.
일부러 가르치지 않아도 깨우치던 기특한 아들은 이젠 어른이 다 되었다. 몇 달 후면 대한민국의 늠름한 군인으로서의 의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다. 심신이 건강하게 잘 자라준 게 고맙고 대견하다. 단지 바람이 있다면 비록 넉넉한 생활의 여유는 갖기 어렵더라도 삶은 달걀 하나로도 행복하던 가난한 날의 우리들처럼 소박한 마음의 여유를 아들이 지니고 살았으면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