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으로의 첫 발길
살아가는 동안 내가 찾을 수 있는 고장이 과연 몇이나 될까. 여러 번의 발걸음에도 또 찾고 싶을 만큼 정이 가는 곳이 있는가 하면 몇 번을 벼르고도 가지 못하는 땅이 있다. 내겐 섬진강변이 전자이고 남도 땅이 후자의 경우다.
언제나 산을 찾으며 가는 길이라 큰 산이 귀한 남도 땅에 발길 닿기란 쉽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넓은 들판을 시원스레 지닌 남도의 들녘은 늘 그리움으로 남곤 했다. 산이 좋아 산을 찾지만 때로는 무엇 하나 막힐 것 없이 끝도 없는 지평선을, 가슴을 탁 트이게 해 주는 지평선을 그려 보기도 한다.
전라남도 광양, 내일 아침이면 그 곳으로 간다. 어떤 고장일지 낯선 땅이라 더더욱 설렌다. 진주를 거쳐 순천으로, 순천에서 다시 광양으로, 남도 땅을 실컷 밟을 수 있다는 생각에 벌써 신이 난다.
일행들은 미리 가고 혼자 하는 여행이라 무엇에도 방해 받지 않아서 좋다. 간혹 길을 헤매면 어쩌나하는 신선한 불안감까지 가세해 가슴 두근거린다. 어릴 적엔 어딘가로 가며 밖으로 보이는 풍경에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고작 눈앞의 경치를 멍하니 쳐다보며 참 아름다운 곳이구나, 정말 멋진 곳이야 하는 짧은 감탄사가 전부였건만 지금의 나는 너무 많은 것들을 겹쳐서 읽는다.
살아 온 세월의 이끼가 그만큼 덧칠해져서인지 지나쳐 가는 장면 하나하나에 웬 사연들이 그리도 스치는지. 떠올려 지는 얼굴의 주인공들은 기억하고 있는 나를 생각이나 할런지 모를 일이다. 추억으로 넉넉하다는 건 즐겁기 만한 일은 아닌 모양이다. 풋풋한 그리움의 향기보다 가끔은 씁쓸한 아쉬움의 고통이 더 크게 느껴지기도 하니 말이다. 나는 내일 또 어떤 풍경들과 만날 지.
아주 옛날 철부지 코흘리개 때는 모르는 길을 이리저리 방황하는 야릇한 흥분에 이웃한 남의 동네를 기웃댄 적도 있었다. 무슨 재미였을까. 아마 새로운 곳을 기웃대며 마음 설레던 그 호기심이 좋아서 그랬을 것이다. 그런 해매임을 신나는 탐험쯤으로 여겼던 것 같다. 세월이 흘렀어도 아직 그런 치기를 지니고 있음이 고마운 일이다. 광양으로 가는 첫 발길, 내일 아침이 기다려진다.
진주는 한 이십 여년 만이다. 아주 잠깐이었던 대학 시절에 우연찮게 알게 된 친구에게 초대받은 일이 있었다. 한 여름 무더위에 변영로의 시로만 기억하던 남강을 진주성의 촉석루에 걸터앉아 내려다보았다. 아! 강낭콩 꽃 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 꽃 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논개의 그 충절이 아직도 흘러가고 있는 듯한 비장함을 그 강물에서 느꼈던 것 같다.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했는지 그 물결에 빠져들기라도 할 듯이 한참을 말없이 응시했던 것 같다. 펄펄끓는 이십대를 80년대에 보낸 우리 세대는 참 암울한 시절을 보냈다. 그 시절이 주는 어두운 배경에 늘 무력하기만 하던 청춘의 시간을 어떻게 타고 넘었는지, 그저 지금이 있기까지 감사할 따름이다.
강남터미널에서 진주행 고속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젊은 날의 온갖 모습들이 스틸 컷이 되어 지나간다. 진주라 천리길 먼 길이었다. 여수 가는 기차로 진주역에 내리기까지 여덟시간이나 걸리는 길이었다. 이젠 지나간 날들이 그렇게 천리 먼 길처럼 멀어지고 말았다.
진주 터미널에서 순천가는 버스를 갈아타고 모르는 길을 달린다. 사천가는 길을 지나고 내가 좋아하는 섬진강을 지나간다. 휴게소에서 쉬는 사이 강물에서 짭잘한 냄새가 나기에 입에 대 본다. 신기하게도 짠기가 느껴진다. 섬진강물이 짠물인 걸 여지껏 몰랐다니, 가도가도 배울 일 투성이다. 3월 초순이라 순천의 담장에는 매화가 몽실몽실 여린 꽃망울을 틔우고 있다. 아, 이런 정겨운 그림이 따뜻한 남쪽나라에는 그려지고 있었다.
순천까지 마중나온 지인의 차로 백운산으로 향한다. 좋은 마음으로 여기까지 오게 되었지만 알고보면 사연이 기구하다. 지난달 백두대간 길에 육십령 구간을 넘으며 있었던 일부터 시작하자. 열 시간이 넘는 고된 구간이었다. 새벽 3시부터 야간산행으로 짬잠이 휴식을 취하며 종주하는 중에 백운산을 넘으며 일이 벌어졌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걷다가 잠시 쉬는 사이 후미의 일행을 놓치고 만 것이다. 그것도 십 여분 후에 알게 되었으니 난감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서둘러 선등대장이 뒤돌아가 찾았지만 한 시간을 헤매고도 찾지 못하고 말았다. 이 험한 산중에서 혼자 어디로 갔을까. 다들 불안과 긴장 속에서 애를 태웠다. 한참 의논 끝에 결국 우리는 먼저 하산키로 하고 대장이 홀로 남아서 찾아보기로 결정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신고를 했어야 맞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무튼 산에서 잔뼈가 굵은 대장을 믿고 일행은 무거운 마음으로 하산했다.
다음 날 출근하자 실종된 일행을 찾았다는 말을 전해듣는다. 진즉 연락이라도 해 주지 하는 원망을 하면서도 안도감과 함께 그제서야 피곤이 밀려왔다. 좌초지종을 들어보니 대장님이 찾은 것도 아니었다. 산행 진행방향의 반대편으로 거꾸로 가다 사람들이 보이지 않아 급한 마음에 너무 빨이 간 게 탈이었다. 그 와중에 천신만고로 백운산에서 비박을 하는 부부 두 팀을 만나 하루를 신세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불행 중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그 분들이 고맙고 고마웠다.
이 먼 광양에 오게 된 사연은 그렇게 인연이 된 분들이 우리를 초대하셨기 때문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고향 광양에서 맺은 소중한 인연들을 만나고 싶었다며 모두가 반색을 하신다. 별유천지비인간의 무릉도원도 이런 사람과의 정이 없다면 그 빛을 잃지 않을까.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그림엔 꼭 인간의 모습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내겐 따뜻한 정의 모습으로 기억될 남도 땅 광양이다. 그 길을 가며 바라본 나의 지난 시간과 오늘이 즐겁게 오버랩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