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월정교, 신라의 밤을 걷다

정진숙 2019. 7. 1. 15:03

 

 

 

 

 

 

신라의 밤에 달은 끝내 뜨지 않았다.

사라진 서라벌, 고도의 잔영들만 옛 성터를 맴돌고 있었다.

 

동궁과 월지를 나와 월정교로 가는 길에

여름 밤 개구리 울음소리가 요란하다.

밤 9시, 인적 드문 어둠 속에서 길을 걸으며

불빛 찬란한 교각을 만나기란 도무지 요원한 듯 느껴졌다.

저 모퉁이를 돌면 월정교가 과연 있을까.

적막한 저 너머, 어딘지 모를 곳을 향해

걱정 반 기대 반으로 경주국립박물관 앞을 지나쳤다.

 

희미하게 마을의 윤곽이 드러나자 춘양교지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눈에 띈다.

여기서 어디로 가야하나.

마침 갈짓자 걸음의 마을 촌로 한 분이 멀찌감치 걸어가신다.

한톤 업 된 목소리로 물었다.

죄송하지만 월정교 가는 길이 어느 쪽이예요~~

훠이훠이 두어 번의 헛손질 끝에 돌아온 알콜기 묻은 대답은,

그쪽 끝으로 쭉 가요~

촌로의 길 안내에 힘 입어

잠시 후 월정교의 숨 막히는 자태를 마주했다.

 

깜깜한 어둠 끝에서 갑작스레 나타난 신기루 같았다.

믿기지 않을 만큼 찬연한 빛의 무리로

잠든 마을 너머에서 아득히 빛나는 황금빛 불야성은,

비현실의 신기루처럼 약간은 느닷없어 보였다.

 

그 화려함이 낯설어서일까.

상상의 공간이던, 이미 사라진 옛 고도의 재현에

뭔지 모를 두려움이 설핏 스쳤던 것 같다.

두려움, 짧은 순간의 그 느낌이

낯선 그곳을 얼른 벗어나고 싶게 만들었다.

멀리 구조대처럼 달려오는 택시를 발견하곤 힘껏 뛰어간 찰나

우리가 예약한 차예요, 하며 나타난 사람들

아, 이건 현실이 아닐 거야, 라며 나도 모르게 도리질했다.

 

신라의 후예들은 사라진 왕국의 영화를 가공으로라도 되살리고픈 욕망이 있었던 건가.

월정교를 재현해내는데 510억이란 엄청난 액수의 돈이 쓰였단다.

전문가들은 고증에 의한 복원이 아니라 마치 세트장 같은 재현이라고 볼멘소리를 했다는 후문도 있다.

차라리 상상의 몫으로 남겨둠이 더 낫지 않았을까.

 

경주 최부자집 고택이 있는 교촌마을을 지나

반월성, 첨성대, 대릉원의 야경 속을 걸어 숙소로 돌아갔다.

천년 영화의 찬란함 위에

새천년의 미망이 혼재된 타임 슬립의 고도 경주

과거와 현재가 낯설게 뒤섞인 신라의 밤을 걷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