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도시 군포, 이 작은 도시에 사는 것이 행복하다.
군포 시는 시의 슬로건에 맞춰 매월 작가나 명사를 초청해 인문학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전 여러 차례의 행사 중 소설가 성석제와 황석영의 강의를 참관했다.
이 달엔 세 번째로 김별아 작가의 강의를 듣는다.
그녀의 작품은 아직 읽어본 게 없어 내겐 생소한 작가였다.
인터넷으로 찾은 정보에 의하면 드라마 <선덕여왕>으로 유명세를 탄, 소설 <미실>의 원작자로 이미 작가로서의 탄탄한 명성을 얻고 있었다.
1993년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한 이후 10년의 작품 활동을 해오던 중 2005년 역사소설 <미실>로 제 1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하며 역사속 인물의 삶을 조명하는 자신만의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열어 가고 있다.
작품의 근간이 되는 역사에 대한 인식의 출발점을 그녀는 연세대 재학시절의 학생운동 경험에 두고 있다고 말한다.
당시 사회적인 파장이 컸던 문제의 중심에 서서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의 흐름 속에서 개인이라는 존재는 무엇인가, 우리의 느낌은 어디로 사라져 가는가, 작가의 손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되었다고.
학생회 집행부원으로서 격동의 한 복판에서 겪어야만 했던 일련의 경험들은, 문득 작가로서의 고민은 사라지고 사회현상 속에 매몰되고 있는 자신을 돌아보게 하였다. 그리고, 끊임없이 흘러가는 역사 앞에서 나의 존재는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봉착하게 된다. 그런 의문들이 작가를 꿈꾸던 원래 모습으로 되돌아 오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이후 역사소설에 눈을 돌리게 했던 결정적인 동기는 1989년 김해 한 소장가가 내놓은 화랑세기 필사본을 의해서였다. 1930년대 박창화씨가 필사한 이 책은 내용의 진위 여부를 떠나서 새롭게 밝혀진 신라사회의 충격적 내용들로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학계에서 정설로 인정된 사료와는 너무도 판이하게 다른 권력층의 개인사를 적나라하게 묘사한 화랑세기 필사본은 남성중심의 역사 기술에 대한 진정성에 의문을 품게 만든다.
그런 논란들로 인해 기존의 정사에 강한 의구심을 갖게 되었고, 역사 속 여자들의 삶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정사에서는 배제된 여성의 권력, 드러나지 않은 여인들의 삶, 그녀들은 왜 기록에서 사라져 간 것일까.
여러 의구심들은 살아남은 자들의 시각으로 기록된 사료의 행간에서 숨겨진 역사를 찾아 읽게 하였고 사라진 여인들의 삶을 재현해 내기 위한 작업에 몰두하게 만들었다.
작가로서의 입지를 다지게 해 준 미실의 탄생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미실은 여성에 대한 이분법적 구분인 성녀, 악녀의 경계를 넘어서는 캐릭터이다.
작가는 화랑세기 필사본의 내용을 두고 일었던 허구다 소설이다, 라는 논의에 강한 반발이 생기더라며 그렇다면 소설속에서 그 진실을 드러내 보자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조선여성 삼부작 중 <채홍>, <불의 꽃>에 이어 세 번째 작품인 <사랑으로 죽다>를 집필 하고 있다.
그녀는 작가라는 관점에서 역사를 이렇게 정의한다.
"역사는 교훈이다.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나를 알기 위한 좋은 텍스트이다.
단종의 비 정순왕후의 기구한 삶을 들여다보며 역사는 위로다. 서로 사랑하고 아껴주는 마음의 기록이다 하는 걸 알았다.
그리고 역사소설은 펙트를 유지하는 가운데 행간의 의미를 읽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작가적인 욕심은 역사속에서 여성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찾아 남성중심의 역사관을 탈피한 완성된 역사를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또 앞으로의 작품세계 역시 역사에 집중할 것이라며 강한 의지를 밝힌다.
"작가가 되는 건 쉽다. 그러나 작가로 사는 건 쉽지 않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 내가 잘 아는 것에 대한 작품을 꾸준히 쓰고 싶다"는 김별아 작가.
"백만 부를 파는 한 명의 작가보다 만 부를 파는 백 명의 작가가 더 필요하다.
한 명의 작가는 하나의 세계다. 다양한 작가의 세계에 관심을 보내주길 바란다"며 그녀는 당부와 함께 강의를 마쳤다.
단상에 서 있는 그녀는 자그마하고 다소곳한 체구의 평범해 보이는 여자였다.
그러나 세상의 절반인 여성을 향해 갖는 관심과 사랑은 너무도 야무지다.
역사 위에서 절반의 확고함을 구현해내겠다는 당찬 소설가 김별아.
시대를 앞선 아버지의 혜안으로 지어진 한글 이름 덕분에 어릴 땐 많이 힘들었단다.
남보다 튀는 게 싫었던 그 즈음에 학기 초면 특이한 이름 때문에 제일 먼저 선생님들의 호명을 받곤 했는데 그게 너무 싫었다고.
자신의 이름에 익숙해지고 받아들이기 시작한 건 마흔이 넘어서란다.
늘 일등을 놓치지 않았던 학창시절이지만 공부밖에 몰랐던 그때가 그리 행복한 건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행복이 뭔지 알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작가다.
대안학교에 다니는 고2 아들을 둔 그녀는 아이들이 지금 이 시간에 행복하다면 십 년, 이십 년 후에도 행복할 것이기에 그 아이들이 매일매일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덧붙인다. 그녀는 작가이며 보통의 엄마였다.
강의를 경청하며 김별아라는 또 하나의 세계와 만났다.
세상의 절반이면서도 소외된 역사로 살았던 앞서간 여인들, 작가 김별아의 작품 속에서 그녀들이 행복하게 환생할 수 있기를 진정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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