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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이 든다는 것

정진숙 2017. 5. 15. 08:52

 

 

 

 

일터로 향하는 시간이다.

지나가는 길 모든 것이 사랑스럽게 눈에 밟힌다.

밤새 마음 밭이 한 뼘 정도 더 넓어진 건가.

 

한 열흘 피었다가 조금씩 시들어가는 연분홍 작약 꽃도 예뻐 보이고

이제 막 꽃망울을 맺은 접시꽃줄기도 유난히 싱그럽다.

아파트 담벼락 옆 싱겁게 키만 큰 낙엽송도 시원시원해 보이고

눈에 띄는 어느 것 하나 어여쁘지 않은 것이 없다.

 

늘 그 자리에 있었던 많은 것들이

오늘 따라 마음 가득히 차고 들어온다.

긴박한 뉴스 속보도 지지부진한 이 달의 성과도

지금만큼은 아무런 압박감을 주지 않는다.

 

봄 하늘답지 않게 청명한 대기와 살랑대는 푸른 바람

그 모든 걸 아우르며 곰실곰실 살갗을 스치는 오월의 햇살

어제와 다른 이 충일감은 맑은 햇살 덕분이다.

 

계절이 오고가는 순리를 알게 됨을 철이 든다고 했던가.

봄날이 내 옆을 스쳐가는 찰나를 이렇게 기쁨으로 바라볼 수 있다니

철이 들어가는 게 맞나보다.

초록이 짙어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 계절이 지나가고 있다.

봄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