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주일 전 가족 여행길에 남동생이 사진 몇 장을 건네준다.
어머니가 계신 친정집을 청소하다가 발견한 막내 사진이라며.
삼십 년 전의 빛 바랜 사진들이다.
그 중 몇 장은 내 것이었다.
흘러간 시간만큼이나 남루해진 사진 속에
스물 일곱의 푸른 내가 있다.
1987년 가을, 대청봉 정상석 앞에 앉아 찍은 사진
설악산 대청봉은 내 일생 처음 오른 산이다.
티셔츠에 청바지, 등산화 하나가 산행복장의 전부였던
참 무모한 등반이었다.
새벽 세시 오색에서 시작해 대청봉으로 오르던 때의 첫 느낌은
이 오밤중에 도대체 무슨 짓인가 하는 어이없음이었다.
힘든 와중에도 칠흑같던 어둠과 코발트빛의 여명이 잊혀지지 않는다.
가을 새벽 청정한 숲의 기운과 설악의 맑은 계곡물 소리도.
단풍으로 불타는 천상의 골짜기 천불동을 지나
외설악으로 내려온 총 열 두시간의 산행은 정말 힘겨웠다.
다시는 산에 오나봐라 벼르며 서울로 돌아오던 날이 바로 엊그제 같다.
한 일주일 끙끙거리면서도 설악의 가을 풍경이 눈에 아른거렸다.
그 후로 소백산, 지리산, 태백산, 월출산, 오대산, 함백산, 주왕산, 백두대간 까지.
많은 산을 오르게 되었다.
기껏해야 한달에 한 번이지만 아직도 산행을 하고 있다.
세상에 꾸준함을 이길 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여태껏 병원 신세져 본 일없이 건강하게 사는 걸 보면
한달에 한 번 삼십 년을 산행해 온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건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