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런 무모한 도전을 했을까.
새 천년이 시작되기 전 연말쯤이었나 보다.
무언가 의미있는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의무감 비슷한 게 마음 한켠에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작정한 일이 백두대간 종주였다.
90년대 무렵만 해도 산행인구가 지금처럼 많지 않았거니와
대간종주도 그다지 활발하지 않을 때였다.
아무튼 백두대간 종주는 이듬해 봄부터 시작되었다.
남원시 주천면에서 첫 들머리를 잡았다.
3월, 아스라히 봄 기운이 번지던 들녘이 생각난다.
여원치에서 성삼재로 가는 20키로
정령치와 만복대를 넘어 가는 구간이었다.
그렇게 겁도 없이 첫 발을 내딛은 백두대간 종주는
짧게 나누어 삼 년여 동안 매달 이어졌다.
그리고 끝까지 마무리하지 못하고 마친 지가
십수년이 넘는다.
가끔 다시 해볼까 싶은 맘이 들다가도
얼른 고개를 흔든다.
너무 힘들었던 기억이 떠올라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껏 내가 산길을 걷고 있는 건
그때의 느낌들이 힘들었던 것만은 아닌 때문이다.
봄이 오는 들판, 가을이 익어가는 숲길
새벽녘 어슴프레 동이 터오는 산등성이
비바람 눈보라 치던 힘겨운 날
그 모두가 아름다운 날들로 맘속에 남아있다.
지리산 정령치,
다시 그길로 떠나는 아침이다.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