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전철 안에서 생긴 일

정진숙 2014. 1. 5. 21:01

출근길 전철 안에서의 일이다.

열차 한 대가 연착되어 오는 바람에 가뜩이나 복잡한 객차 안이 오늘은 더더욱 북새통이다. 겨우 한 정거장을 지나고서 문이 열리자 또다시 사람들이 밀려들어온다. 다음 차량을 이용해달라는 안내방송은 아랑곳없이 출입문은 쉽게 닫힐 줄을 모른다. 어찌어찌 문이 닫히고 간신히 열차가 출발했다. 그런데 아이 하나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린다. 무슨 일인가 싶어 승객들이 일제히 같은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웅성거리는 소음 사이로 급한 말소리가 들린다.

“아빠 전화번호 알아?”

“.......”

“그럼 이를 어쩌니!”

일고여덟 살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였다. 덩치로 보아 어느 정도 사리분별은 할 것 같아 보였지만 당황해서인지 아이는 고개만 가로저을 뿐 아무 말도 못하고 울먹이고 있었다. 일인 즉은 밀고 밀리며 차를 타는 사이 아빠가 차에 오르기도 전에 출입문이 닫히고 만 것이다. 졸지에 아빠와 떨어지게 됐으니 얼마나 놀랐을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모두들 아이만 바라보며 당황하고 있었다. 마침 인터폰 근처라 가까이 서있는 젊은 아가씨에게 기관실에 방송 좀 하라고 부탁했다. 다급한 이 와중에 어떻게요 하고 아가씨는 되레 반문한다. 설명하기엔 시간이 촉박하다 싶어 나는 사람들 틈을 비집고 인터폰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두서없이 말을 하는데 수화음만 들리고 통화음이 전해지질 않는다. 경황 중이라 버튼을 누르며 말하는 걸 몰랐다. 수화기 옆의 버튼을 찾아 누르자 음성이 전달된다.

“말씀하세요. 무슨 일이신지.......”

“기관사님, 아이가 아빠를 놓치고 혼자 탔어요. 이다음 열차에 연락해서 방송 좀 부탁해주세요. 아이를 이번에 서는 정거장에 내리게 할 테니 아빠가 그 열차에 타면 한 정거장 후에 내리시라고 방송 부탁한다고요. 바로 좀 전해주세요.”

“아이 혼자 탔나요?”

“네, 휴대폰도 가지고 있질 않아서 연락이 안 돼요.”

“네, 알겠습니다. 아이는 이번에 내리라고 말해주세요.”

“그럴게요. 꼭 좀 부탁드려요!”

이삼 분의 짧은 사이 아쉬운 대로 상황이 정리되었다. 그리곤 아이를 출입문 앞으로 데려 와 어깨를 토닥거리며 안심시켰다. 한 십 분만 기다리면 다음 차로 금방 오실 거니까 무서워하지 말고 내린 자리에 가만히 있으라며 신신당부 했다. 그러고 나자 주위의 어르신들이 한 말씀씩 거드신다.

“아니 어째 그리 신통한 생각을 빨리 해냈어요. 아유, 좋은 일 했네.”

“얘야, 울지 말고 조금만 참고 있어.”

“다른 데 가지 말고 내린 데서 가만히 서 있어야 돼.”

전철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같은 심경으로 아일 걱정하고 있었다. 비록 안타까운 정황이긴 했지만 안쓰러워하는 그 모습들이 얼마나 훈훈하게 여겨지던지. 아이를 내려 주고 서둘러 일터로 향했다. 관리자의 인사이동이 있은 후라 요사이 부쩍 출근시간을 체크하는 통에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다행히 제 시간에 도착했다.

그런데 막상 아빠랑 만나는 걸 눈으로 보고 왔어야 옳았는데 하는 아쉬움이 가시질 않는다. 몇 번 칸 몇 번째 문 앞이란 것도 알렸어야 하는 건데. 차라리 역에다 방송 해달라고 할 걸 그랬나? 급하게 대처하느라 실수한 건 없었는지. 전달이 제대로 안 돼서 혹시 못 만났으면 어쩌나. 개운치 않은 걱정들로 머릿속이 번잡해졌다. 더 이상 어찌 할 도리도 없고 편치 않은 마음을 다 잘 됐을 거라 애써 다독이며 진정시켜 본다. 출근이 조금 늦어져 싫은 소릴 듣더라도 부녀의 상봉 장면을 확인하고 왔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그제야 들게 뭐람.

요즘은 사는 게 참 각박해졌다고 다들 개탄하곤 한다. 나와 상관없는 일이면 무관심하게 지나쳐버리는 몰인정. 어쩌면 이런 뒤늦은 안타까움의 이유도 그런 무심한 세태에 나도 모르게 젖어 살았던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만약 아이를 염려하는 마음이 내 아이 걱정하는 심정만큼 절실했다면 나의 일은 잠시 뒷전이이야 옳았을 것이다. 아주 소소한 행함이라도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은 약간의 희생이 감수되는 일인데 말이다. 서둘러 출근하느라 놓쳐버린 아이를 위한 작은 배려심이 못내 아쉽다. 그나마 전철 안 사람들의 온정어린 눈길을 떠올리며 모두의 마음이 잘 전해져 아이가 무탈하게 아빠를 만났기를 간절하게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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