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성벽에 기대어

정진숙 2010. 5. 22. 21:14

 

 정을 품고 보면 어딘들 낯설겠는가. 비록 태어난 고향은 아니지만 삶의 소소한 일상들이 담겨 있는 서울을 다시 돌아본다. 이른 겨울날, 문우들과 새로 복원된 서울 성곽길을 걸었다. 낙산공원을 시작으로 혜화문을 지나 북악산 까지 가는 일정이다.

 

 몇 해 전 청와대 뒤 북악산 성곽길의 개방되었다. 유실된 구간의 정비가 이루어지며 부분적으로 옛 모습을 찾게된 사적 제10호 서울 성곽, 옛 님들의 발자취를 살피고 살려내려는 의지는 삶이 조금은 풍요로와져서겠다. 잃어버리고 놓친 역사와 유적지를 복원하여 후대에 보전 하고자 함은 역사의 가치를 대하는 의식이 그만큼 높아져서겠다. 더 망가지고 파괴되기 전에 추스릴 수 있음이 다행스럽고 고마울 따름이다.

 

 서울 성곽은 태조가 조선을 건국한 후 정도전의 제안으로 축성하였다. 북악산을 진산으로 인왕산 낙산 남산을 이어 그 사이에 사대문과 사소문을 두고 도읍지를 방위하려는 의도였으나 실질적인 방어의 역활보다 도성을 호위하는 상징적인 의미가 더 강했다고 한다.

 

 1396년 평지에는 토성으로 산지에는 산성으로 계획되어 전국의 농민 20여만명을 동원하여 조성한 방대한 공사였다. 당시 한양의 인구가 10만이었던 것을 감안한다면 굉장한 규모의 공사임을 짐작할 수 있다.

 성곽이 축조된 후 600년이 흐른 오늘, 이제는 시간의 흔적이 켜켜이 쌓여 거무스레해진 돌더미 위로 새로 쌓아 흰 빛깔이 그대로 드러난 돌무더기가 올라앉아 있다. 어딘가 모르게 부조화스런 생경함이 왠지 모진 역사의 상채기를 대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그러나 안쓰러움에도 불구하고 허물어져 몸을 낮추었던 성벽은 돌틈 사이사이 이끼를 품은 채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었다.

 

 서울 도심을 온화하게 아우르는 긴 성곽길은 일제강점기 전차 부설과 도시 확장의 명목 하에 의도적으로 토성이 철거 되기 시작했다. 그 후로도 근대화의 이름 아래 자의적인 파괴의 쓰라림을 겪으며 토성 부분은 세월이 가는 대로 사라지고 소실되어 흥인지문과 숭례문만 간신히 남아 지금에 이르렀다.

 그나마 원형 대로 남은 곳은 산성의 일부이고 어느 구간은 마치 축대인양 그 위로 집이 들어서고 빌라가 지어져 길이 끊긴 곳이 비일비재하다. 어쩌면 역사의 풍상을 이겨내는 것은 이렇듯 질긴 삶의 현장이 아닐런지.

 

 낙산공원 옆은 얼마 전까지 성벽에 기댄 채 달동네의 허술한 집들이 가득했다. 예나 지금이나 성 밖의 인생은 참 애닯구나 싶다. 그 많던 민가들이 모두 내몰리고 깨끗한 산책길이 조성된 걸 보고 있자니 이런저런 만감이 교차한다. 그들 중 하나였다면 생활의 터전을 앗긴 아픔이 더 클 터인데 길을 따라 걷는 나그네의 변으론 잘한 일로만 여겨지니 얼마나 모순된 사고인가. 그러나 개악이 아니고 개선이라면 시대는 아픈 만큼 더욱 성숙할 것이다.

 

 혜화문을 지나 길이 끊긴 골목길에서 잠시 해맨다. 성벽이 사라진 그 자리에 학교가 보이고 언덕 위로는 잘 단장한 집들이 터를 잡았다. 힘있는 이들이 내 몫을 지킬 수 있음은 세상의 이치겠지만 가진 것 변변치 않던 이의 터전이던 낙산의 모습과는 대비되어 괜스레 씁쓸해진다.

 

 성북동 고개마루를 오른다. 저만치 아래 소나무 가지 사이로 11월의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정릉이 자리잡고 있다. 늘 삭막하게 존재하던 도시가 아늑하게 다가오며 차가운 초 겨울의 공기마저 달콤하게 느껴진다.

 

 말바위 쉼터에서 출입허가증을 받고 북악산 길을 올랐다. 냉전의 시대인 60년대 말, 북의 간첩이 이 산을 넘어 청와대로 진입하려 했던 아찔한 사건이 있었다. 그 후로 40여년 동안 통제하던 길을 성곽길 개방과 더불어 해제하며 출입사항을 신고케 하는 모양인데 예까지 와서야 알게 되었다. 아직은 완전한 자유의 시절이 아님을 실감한다.

 

 오른편으로 북악스카이웨이 팔각정이 보이고 그 아래로 유명한 삼청각이 보인다. 4공화국 쯤인가, 여기서도 웃지 못할 밀실정치의 일화가 많았던 것 같은데...... 서슬 시퍼렇던 독재도 사라지고 창창하던 이념의 칼날도 점점 무디어지고, 세상이 변해가는 건 누구도 어찌하지 못하나 보다. 

 

 눈길 닿는 곳곳마다 얽힌 사연들도 많다. 그 모두를 보듬고 성곽은 무심히 시간 속에 버티고 서 있다. 성벽에 기대어 그윽히 시가지를 내려다 본다. 상처가 있고 아픔의 역사가 있을 망정 서울이 한없이 한없이 정겨워진다. 내가 나고 자란 땅 대한민국이기에, 선조가 물려주신 땅 한양이기에, 그리고 우리가 다시 물려줄 곳이 바로 이 땅 서울이기에 그 모든 흔적들이 귀하디 귀하고 소중하다.

 이른 겨울날, 성곽길을 걸으며 마음 한켠으로 지긋이 전해오는 핏줄의 진한 연대감을 느낀다. 나의 오늘이 있음은 조상의 어제가 있기에 가능하지 않은가. 선조가 우리에게 남긴 역사에 감사하며 삼청동 길을 따라 육백년 얼이 서린 종로를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