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댈러웨이 부인 / 버지니아 울프

정진숙 2011. 2. 13. 19:24

정명희, 버지니아 울프(Adeline Virginia Woolf ) | 도서출판솔 | 2006/03/23

 

늙은 여류작가 버지니아 울프의 이야기를 펼쳐들고 클러리서 댈러웨이부인의 자잘한 일상 속으로 이끌려 간다. 적어도 책 속에서만큼은, 그녀가 살던 백년 전의 하루나 오늘을 살아가는 여인의 하루나 여자의 삶에 궁극의 변화는 없는 듯하다. 이른 여름의 햇살을 망연히 바라보는 클러리서의 막막한 하루에 비해서, 수리산 그늘의 애처러운 그림자가 유난히 서글퍼지는 21세기의 나의 삶은 과연 얼마나 달라진 걸까.

 
소설 댈러웨이 부인은 정치 비평가 레너드 울프와 결혼한 버지니아 울프의 자전적 이야기다. 영국 하원의원인 리처드 댈러웨이의 부인 클러리서의 초여름 어느 하루를 다룬 내용이다. 그러나 배경의 계절과는 다르게 극의 분위기는 사뭇 11월의 흐릿한 하루처럼 다소 무거운 이미지를 드리우고 있다.


수 많는 명사들을 위해 파티를 여는 것이 일상인 지적이고 우아한 댈러웨이 부인. 그녀는 끊임 없이 파티를 계획하고 준비한다. 마치 그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하지만 언제나 공허함과 씁쓸한 여운을 남기는 것이 그녀의 삶이다.

지난 날 클러리서를 흠모하던 피터 월시는 인도에서 돌아오는 첫날 그녀를 방문한다. 비록 젊은 날의 빛을 발하던 정신과 영혼의 광채는 사라졌어도 여전히 아름답고 고상한 그녀를 바라보며 우리 모두는 정말 행복한 것일까하고 피터 월시는 반문해본다.

쉰셋의 나이가 된 그는 인생을 관조하고 곱씹으며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예지를 지니게 된 자신이 만족스럽지만 겉으론 아무 것도 이룬 게 없는 지금의 처지에 자괴감이 든다.

 
작중의 또 한 사람의 중심 인물 셉티머스는 전쟁영웅이다. 친구 에반스의 전사를 바로 옆에서 목격하고 종군한 그는 현실에 조화하지 못하고 오랜 후유증에 시달린다. 결국 정신병의 발작으로 댈러웨이부인의 파티가 있는 날 다락방의 창문에서 투신한다. 파티장에서 목격하게 되는 이 사건은 흩어져 있던 인물들을 하나의 중심으로 동시에 연결 짓는 한 지점이 된다.

등장인물들은 각자 다른 영역에 있으나 작중에서 심리적으로 긴밀한 유대감을 이루어 극을 긴장감 있게 이끌며 미묘한 정서를 만들어간다. 버지니아 울프의 섬세하고 유연한 문장력이 극의 상황에 몰입하게 만든다. 그녀의 실제 삶이 작품 곳곳에 배어 있기에 가능할 것이다.


전체적인 소설의 구조는 등장인물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는 구성이다. 인물 각자의 심리상태와 회상으로 대상을 그려내고 내용을 펼쳐가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주인공들은 각자 다른 위치에서 줄거리를 구성하지만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녀는 대부분의 작품에 자신의 모습과 생활을 투영시켜 예술로 승화시키며 자신의 이미지를 형상화하는데 성공한 여류작가다. 일상에 잠식되어 자기만의 영역을 쉽사리 이루어내지 못하는 운명적인 여자의 인생, 영혼으로 수용하길 부단히 거부하면서 필연적으로 이끌려 갈 수 밖에 없는 여인들의 밋밋하고 울적한 일상들이 그녀의 여러 작품 속에 산재되어 있다.

  
1882년생인 버지니아는 부친의 친구인 브라우닝, 하디, 러스킨, 페이터 등과 오빠의 영향으로 케인즈, 메카시, 레너드 울프 등 많은 문인과 석학들 사회 저명인사와 교류하며 문화적인 분위기 속에서 미술,문학, 인생, 정치, 경제의 사상을 논하고 연마하며 성장했다.

1912년 그녀와 결혼한 레너드 울프는 좋은 남편이자 작가로서의 성장을 도와주는 협조자였다. 겉으로 보면 유복하고 평탄한 인생인듯 보이지만 내적으로는 많은 갈등과 번민이 있음을 작품 전반에서 발견할 수 있다. 사회적인 인간적인 한계로 인해 겪는 고통스러운 내면의 모습을 그녀는 대부분의 작품에서 그대로 드러내거나 반영한다.

 
1941년 전쟁 중 인간 군상들의 행태에 좌절하고 깊은 회의감에 빠진 그녀는 남편 앞으로 유서를 남기고 별장 옆에 있는 우즈강에 뛰어내리며 59세의 생을 마친다.

"나는 미쳐버리고야 말 것 같습니다. 허망한 말소리들이 들리는 것 같고 창작에 집중할 수가 없습니다. 이겨내려 싸워도 보았지만 더는 싸울 수도 없습니다. 내 생전의 행복은 모두 당신이 주신 것입니다. 당신은 탓할 데 없이 훌륭한 남편이었습니다. 목숨을 이어가면서 당신의 생을 괴롭힐 수는 없었습니다."

극 중의 셉티머스 워런 스미스의 독백과도 같은 유서를 남기고 그녀는 떠났다.

 
병약하고 예민한 성격의 버지니아 울프는 일생을 죽음과 삶과 시간의 미에 대한 탐구와 번민으로 살았다. 어쩌면 고민하고 갈등하며 살아가는 건 그녀만의 것이 아닌 모든 인생의 명제 아니던가. 그 속에서 보석을 찾는 일은 각자의 몫일 것이다.

"작가의 마음의 모든 비밀, 생에 대한 모든 체험, 정신의 모든 특성은 작품에 역력히 드러난다." 문학에서 존재의 의미를 찾았던 버지니아 울프의 이 말이 의미심장하게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