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봄날은 간다

정진숙 2012. 7. 4. 14:20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 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마치 그림이 그려지듯 애절함이 느껴지는 노랫말이다. 장사익의 목소리로 다시 듣는 느낌을 뭐라 표현해야 할까. 삶의 바닥 끝까지 끌어내리는 그의 절절한 음색은 비장감 마저 맛보게 한다.

 그래서인지 국악기로 반주되는 한의 정서와 절묘하게 어우러진 그의 곡조에서 벗어나기란 결코 쉽지 않다. 몇 번을 반복해 듣고서야 구슬픈 노래가락에서 가까스로 벗어난다.

 

 원곡을 부른 여가수의 가녀린 목소리와 내 어머니의 목소리가 겹쳐져 울리는 봄날은 간다는 나의 이십대부터 18번곡이었다. 젊은 나이에 걸맞지 않은 선곡을 두고 남들은 너무 청승맞다거나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다며 한 마디씩 거들었다. 그럼에도 개의치 않고 이 노래를 유독 좋아했다.

 이 곡을 부르거나 듣고 있노라면 아득한 예닐곱 살 적의 일이건만 오십이 넘은 지금까지도 한 여름 오후의 기억이 떠올라 남다른 감회에 잠기곤 한다.

 

 여기저기 막 큰 길을 내기 시작하던 무렵 이야기다. 대구 비산동의 초가에서 여덟 살이 되도록 살았다. 흙먼지 날리는 신작로를 놀이터 삼아 맨발로 뛰놀며 어린 날을 보냈다. 더운 여름 한바탕 놀다 지쳐 집으로 들어서면 어머니는 늘 일에 치어 사느라 나를 돌아 볼 겨를조차 없으셨다. 보살핌은 커녕 도리어 더 어린 동생들의 손발을 닦아주며 맏이 노릇을 해야만 했다.

 

 바느질 솜씨가 좋은 어머니는 재봉틀에 앉아 삯일을 하실 때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옛 노래를 따라 부르며 흥얼거리셨다. 툇마루에 앉아 턱을 괴고 무심히 듣던 철부지가 그 노래에 담긴 애틋함을 알기나 했을까.

 비록 가사에 얽힌 사연을 다 알진 못해도 막연하게 전해지는 애조 띤 정서에 괜한 서러움 같은 것이 느껴지곤 했다.

 

 이후로 어머니의 애창곡은 그대로 나의 애창곡이 되었다. 아마도 그 노래들을 저절로 좋아하게 된 건 그 시절 어머니의 젊은 날이 그 노래에 묻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긴 고생 끝에 지금은 심신이 쇠약해지신 어머니를 바라보며 세월의 풍상이 서리지 않은 고운 얼굴의 그때의 어머니가 그리운 까닭에서일지도 모른다. 어머니의 고단했던 삶을 이젠 나 또한 이해할 수 있어서일지도.

 

 한 시 전문지에서 시인들을 대상으로 한국의 가장 아름다운 노랫말을 조사하였더니 시인들이 뽑은 아름다운 노래 1위에 이 곡이 뽑혔다고 한다. 감성은 서로 공유하면 감동이 더 커지는지라 TV의 자막을 읽는 동안 마음속으로 작은 탄성이 터졌다. 그래, 이 노래는 유행가가 아니라 바로 시였어.

 

 누구라도 지나간 날엔 이런저런 회한이 묻어 있으리라. 가는 것은 모두 슬프고 아쉬운 법이다. 봄날은 간다. 내게도 있었던 봄날이다. 누리기도 전에 가는 것을 먼저 안타까워하느라 제대로 누리지도 못하고 가버린 봄날이다.

 얼마나 바보였던지 이제 와서야 후회가 된다. 하지만 가는 봄을 어찌 잡을 수 있으랴. 더는 안타까워하지 말자. 더는 후회하지도 말자. 남은 날들도 그렇게 떠나갈 것이기에 그저 오늘을 충실하게 살면 그만 아닌가. 내 인생 남은 날의 가장 젊은 날, 봄날은 오늘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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