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중에 집을 나서며 이 삼복더위에 행사를 잘 치를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그런가 하면 나름대로 기대감도 크다. 가야할 행선지가 오랜만에 발걸음 하는 경주여서인지 부쩍 설렌다. 수필의 날 첫 일정이 시작되는 동국대 경주캠퍼스에 들어선다. 야트막한 산으로 둘러싸인 녹음 우거진 교정이 고도의 이미지와 어우러져 정갈하게 다가온다. 언덕 위 푸른 소나무 밭에 백로 떼가 빼곡하게 앉았다. 도심에선 상상할 수 없는 진기한 광경이다. 자연과 임의롭게 조화를 이룬 캠퍼스 풍경이 인상적이다. 전국에서 모인 수필인과 더불어 동국대 백주년기념관에서의 심포지엄을 무사히 마쳤다. 안압지 야경을 둘러본 후 숙소인 운문산 휴양림에서 첫 날 일정을 마무리한다.
청도 운문사를 출발한 버스는 경주에 도착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을 달렸다. 둘째 날인 오늘은 양동마을을 방문할 예정이다. 서울에 폭우가 내릴 거라는 예보를 들은 터라 내심 불안했건만 양동마을에 들어서자 비는커녕 폭염이 푹푹 내리쬐고 있었다. 한여름 손님은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옛말이 실감난다. 제 아무리 반갑고 즐거운 일정이라 하더라도 복중에 진행하는 행사는 기획하는 운영진이나 참가자 모두에게 힘에 부치는 일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어느 누구 불평하는 이가 없으니 행사에 임하는 문우들의 열정이 얼마나 지극한지를 알 수 있겠다. 주관하는 운영진의 노고에 새삼 감사한 마음이 든다.
주차장에 내려 마을 입구까지 걷는 동안 후끈거리는 불볕더위의 위력은 대단하다. 때 마침 점심시간이라 허기도 달래고 더위도 피할 겸 식당을 찾았다. 그런데, 이곳저곳 기웃거려 보지만 마땅히 식사할 만한 곳이 보이질 않는다. 이런 난감한 경우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양동마을에 밥 먹을 만한 데가 없다니. 현지 주민이 주거지에서 운영하는 몇 곳의 작은 식당은 궁여지책일 뿐 행사에 참여한 수 백여 명의 인원을 수용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동네를 두어 차례 돌다가 돌담 어귀에 소담하게 화단을 꾸민 백리향 식당으로 들어섰다. 평상에 간신히 자리를 얻어 앉아 동동주와 도토리묵, 파전을 주문했다. 시간이 꽤나 흘렀다. 세월아 네월아 도통 음식 나올 기미가 없다. 일손을 보태겠다며 주인장에게 청해 보지만 한사코 거절한다. 등 구부정한 안주인은 좁은 주방에서 땀 흘리며 분주하고 바깥 노인장은 연신 마당을 오가신다. 이래저래 더딘 거 맘 편히 나 있자 하고 우두커니 기다렸다. 그래도 손님이라곤 방안에 서너 팀이 전부인데 이건 너무하다 싶어 부엌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전 부칠 부추는 아직 채반에 담긴 채 그대로다. 그나마 재촉해서 나온 묵은 김치와 도토리묵에 동동주 두어 잔으로 요기 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위에 지쳐 터덜터덜 걸으며 이 양반들 이렇게도 장삿속이 없나 하고 투덜대다가 방금 전 한 장면을 떠올리며 제풀에 겸연쩍어진다.
우리는 바로 조금 전, 매표소를 통과하며 과거라는 블랙홀로 빠져들듯 마을로 이동했다. 초가 담장에 박 넝쿨이 올라간 낯익은 정경에서, 정갈한 주름치마에 자수 놓인 양산을 다소곳이 쓰고 소박하게 멋을 낸 예전 어머니의 모습을 겹쳐보며 과거의 풍경 속으로 회귀했다. 그리곤 눈길 닿는 전부가 조선시대 어디쯤인 듯 착각하게 만드는 오백년 전 마을로 타임머신을 타고 온 것처럼 신기해했다. 이리 기웃 저리 기웃대며 대나무 숲이 있는 골목길을 올라갔다.
길 중간쯤에서 마실 나가시는 한 할머니를 만났다. 몸에 배인 단아함에서 안방마님의 기품이 느껴지는 할머니셨다. 동행한 문우 한분이 말씀 좀 여쭙겠다며 혹시 누구 아무개 아시나요, 하고 물으셨다. 설마 아실까 반신반의 하는데 할머니는 택호를 기억하느냐고 되물으신다. 경주가 고향인 그 문우는 대구에서 같이 공부한 여고 때 친구라 자세히는 모르겠고 저쪽 언덕 어디에 살았던 거 같다고 하셨다. 대구에서 공부했다는 말에 그럼 알 것 같다하시며 누구누구 맞느냐고 물으신다. 뜻밖에 사 오십 년 전 동무소식을 듣게 되어 반색 하시는 문우에게, 그 댁의 상 어른은 얼마 전 돌아가시고 친구는 대구에서 살고 있다며 자상하게 알려주신다.
옛날처럼 옆집 부엌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 시시콜콜 알던 시절에야 별스럽지 않은 한담일 수 있겠지만 요즘같이 남의 사정 신경 안 쓰고 나 살기 바쁜 세상에선 듣기 불가능한 대화였다. 두 분의 오가는 이야기를 가만히 들으며 한때 우리도 그렇게 정겨운 시간을 살았었지 하며 아련함에 젖었다.
헌데 마음이란 게 이렇듯 간사해도 되는 건지. 푸근하게 상념에 젖던 순간도 잠시고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 조금 불편한 상황에 맞닥뜨리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낯 빛을 달리 했으니. 방문객들의 조급증이 되레 민망스러울 만큼, 객들의 성마른 요구에 휘둘리지 않는 주인내외의 호기로움과 애탈 것도 아쉬울 것도 없는 무덤덤함이 참 생경했다. 찾아온 손님이라면 의도적으로라도 친절한 게 상술일 텐데, 이 좋은 관광지에서 벌이가 될 만한 일에 온 동네가 이리도 무신경하다는 게 희한하게 여겨졌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어떠한 상황에서 건 자기만의 속도로 살아가는 일만큼 멋스러운 게 있을까 싶기도 하다. 조용한 마을을 여느 관광지와 똑같은 모양새로 만들 필요야 없지 않은가. 전통이라는 엄중한 가치를 약삭빠른 친절과 가벼운 편의로 대체하길 바람은 얼마나 짧은 생각인지. 과거라는 시공간을 만나기 위해 찾은 고도에서 아무렇지 않게 편리를 기대한 건 나의 넌센스에 불과하다. 스피드에 길들여진 도시인의 조바심에 반해 나만의 속도감을 꿋꿋이 지니고 살아가는 것은 다른 시선으로 본다면 나를 잃어버리지 않음의 의미이기도 하겠다. 누대로 이어온 그런 평상심이 오늘 이 시점까지 마을의 원형을 고스란히 지켜오게 한 큰 힘이 아니었을지.
어쩌면 양동마을이 간직해야 될 문화유산은 양동마을이라는 공간적인 역사와 더불어 오백년이란 시간동안 지켜온 그 마을 어른들의 삶의 자세인지도 모르겠다. 마을에서 머문 순간은 잠깐이지만 쉬 사라지지 않는 여운이 남는다. 전통이 현대와 어우러지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