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 지리산으로 가는 길은 여러 곳에 있다.
그 중 내가 좋아하는 길은 구례에서 시작되는 산길이다.
구례는 해마다 봄이면 한 두 번은 꼭 찾는 봄마중길이도 하다.
올 봄만해도 벌써 세 번째이다.
지리산을 오르기 위해 여러 해 동안 이곳을 참 많이도 찾아왔다.
그럼에도 늘 마음만 앞서고 가지 못했던 데가 있었다.
바로 문척면에 있는 오산 사성암이다.
이 곳은 원효, 의상, 도선, 진각 네 분의 선승이 깨달음을 얻었다는 길지 중의 길지이다.
손꼽히는 이 명당을 찾기 위해 오래도록 벼르고 별렀다.
드디어 바람을 이루어 오늘에서야 사성암을 오른다.
넉넉한 구례들녘과 유장한 지리산의 산줄기가 내 눈앞에 펼쳐진다.
섬진강의 물굽이가 구례읍내를 유유하게 흐르는 풍경을 바라보니 감회가 새롭다.
기막힌 풍광은 말할 수 없거니와 가파른 절벽에 세워진 약사여래전의 아슬아슬함에는 경외감마저 든다.
법당 안 마애불은 불심 깊은 원효가 손톱으로 새겼다 한다.
바위 틈 사이 자리한 산왕전은 대한민국에서 손에 꼽히는 기도발이 좋은 기도처다.
꼭 한 가지 소원만 빌어야 한다는 단서가 붙는 묘한 도량이다.
하기야 하루에도 칠백여명의 사람들이 찾아와 기원을 한다니
한 가지 이상 빌었다가는 부처님도 고달프실 거라 염려돼서라는데 믿거나 말거나.
지리산 주능선이 조망되는 정상의 팔각정에서 천왕봉을 바라 보았다.
골짜기 골짜기를 힘겹게 넘었던 시간들이 눈앞을 스치고 지나간다.
힘들고 버거워도 다시 오르곤 하던 저 능선들
아마 나는 또 어느 순간 그 산길에 서 있을 것이다.
약사여래전을 내려오다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어, 아는 사람인데..
한달에 한 번, 일년에 몇 번은 만나는 남편 동창 모임의 부부였다.
너무나 의외의 장소에서 맞닥드리다 보니 순간 멍해졌다.
몇 해을 벼르다 찾아 온 이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이들을 만난 게 참 신기했다.
문득 지금 내 가까이 있는 이들과의 인연은
유행가의 노랫말처럼 우연이 아닌 필연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스쳐지나는 만남이 아닌 꼭 만나야 할 인연들이기에
우린 이 먼 곳에서 이렇게 만나고 또 함께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지금 만나는 한사람 한사람과의 만남은
우연이 아닌 우리의 오랜 바람이 이루어진 것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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