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 1학기, 오후반 수업날이었다.
동생 둘을 내게 맡기고 일보러 가신 엄마가
등교 시간이 다 되도록 오시질 않는다.
학교는 가야겠고 동생 둘을 두고가자니 걱정이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긴 고민 끝에 결단을 내렸다.
다섯 살짜리 남동생과 세 살 먹은 울보 여동생을 데리고 가기로.
세발 자전거를 탄 남동생은 학교 간다고 신나서
흙먼지 날리는 산작로를 씽씽 달렸다.
등에 업힌 여동생은 엉덩이를 들썩이며 덩덜아 신났다.
걱정으로 천근만근인 내 맘도 모르고.
교실에 앉아 주눅 든 내게 선생님은 호통을 치신다.
여기가 고아원이냐며.
복도에서 자전거 타고 놀던 남동생은 옆반 선생님께 혼나고
무서워서 우는 여동생은 시끄럽다 혼나고
어휴, 지금 생각해도 식은땀이 흐른다.
어떻게 하루가 지났는지 모르게 4교시 수업을 마쳤다.
그때 부모님이 허겁지겁 교실로 오셨다.
오후 내내 보이지 않는 아일 찾느라
사색이 된 엄마와 기가 찬 표정의 아버지
나는 이제 죽었구나 싶었다.
선생님께 연신 소란피워 죄송하다 말하는 엄마와는 달리
무섭기만 하던 아버지가 뜻밖에 나를 다독거리셨다.
어, 왜 이러시지?
아버진 내가 너무 대견하다고 그때 일을 두고두고 자랑하셨다.
동생들 잘 챙기는 기특한 맏이라시며.
그런 깊은 생각으로 동생들을 보살핀 건 아닌데
매번 부끄러웠던 기억이 난다.
오늘로 아버지는 팔순을 맞으신다.
울 아버지의 딸로 살면서 고마움 보단 원망을 더 많이 담고 살아선지
그저 죄송한 맘 뿐이다.
그것도 모르고 아버진 늘 자랑스러워 하셨으니.
세월이 사람을 약하게 하는지
젊은 날의 짱짱하던 아버지도 이젠 작아지셨다.
아버지 뿐 아니라
나도 동생들도 어느 새 저물어가는 날을 맞고 있다.
한 세상 가족으로 만난 인연의 시간도
그리 길게 남지 않았다.
남은 날들도 여태처럼 오손도손 살아야지.
좋은 가족으로 좋은 인연으로 다음 생에 우리 또 만나요.
아버지, 생신 축하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