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명한 겨울 하늘과 파란 바다의 대비가 마음 들뜨게 하는 날이다.
제왕산 산행을 마치고 대관령 옛길을 넘어왔다.
7번 국도 동해 바다길을 달려 정동진에 도착한다.
아쉽게도 그리던 옛 풍경은 남아있지 않았다.
바닷가 작은 간이역 외로운 기찻길과 소나무 한 그루
하얀 파도가 검은 바위에 부딪히던
예전의 목가적인 풍경은 사라지고 없었다.
부산스런 설치물들과 엉뚱해 보이는 기차박물관이 놀랍다.
드라마 모래시계가 종영될 무렵 이곳을 찾았던 나의 기억 속엔
이런 생경한 그림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완행열차를 타고 밤새 달려와 첫 발을 내디딘 새벽 정동진역
동행한 셋과 나, 대여섯의 승객만이 열차에서 내렸다.
초여름 습기 머금은 바닷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해무 피어오르는 회색빛 바다가 참 낭만적이었다.
마음 가득 채우는 무언지 모를 느낌, 마치 환상 속을 거니는 기분이었다.
이젠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그때 풍경들.
왜 옛 것은 옛 것의 가치대로 남겨두지 못하는 건가.
꼭 이런 모양새로 변해야만 하는 건지.
정동진 바다를 떠나면서 새로운 소망을 품는다.
오래 전 내가 보았던 그때처럼
낡은 간이역이 서 있는 호젓한 바다가 보고 싶어졌다.
열차를 타고 차창 밖을 스치는 풍경을 바라보는 상상을 하며
남큐슈 오렌지 열차를 버킷리스트에 담는다.
그리고 또 하나의 소망,
오츠크해의 유빙을 꼭 한 번 보고야 말리라는 꿈도 품어본다.
겨울이 시작될 무렵 북극을 출발해 1월 중순 께 북해도에 도착한다는 빙산 조각들
오츠크해의 유빙은 사라진 기억의 파편처럼 하얗게 바다를 메운다고 한다.
1월 중순에서 2월 하순까지만 허락된 상상할 수 없는 그 장관을 그려본다.
놓지 않으면 언젠간 그 꿈들이 이뤄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