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발견>은 팔순의 역사학자 시어도어 젤딘의 시대를 바라보는 혜안이 담긴 책이다. 유럽 지성계의 독보적인 석학이며 지성의 완숙기에 이른 그는 책에서 인간의 영원한 화두인 ‘인류가 조금 더 현명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한 길’이 무엇인지에 다가선다.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다룬 이 책의 특징을 잘 요약한 그의 글과 출판사의 서평을 옮긴다.
“우리 시대의 주목할 만한 특징은 그 어느 시대보다 풍부한 기억을 보유하고도 거의 활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는 방대한 기억의 유산을 물려받았다. (…) 각자의 기억에 다른 사람들의 기억을 더하면 우리가 일생을 살면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관한 생각이 달라진다. 과거를 보는 새로운 관점에 의해 미래를 보는 관점도 달라진다. 역사는 빠져나갈 문이 없는 관이 아니다. 오히려 역사는 해방이고 애초에 있는 줄도 몰랐던 장소의 문을 여는 열쇠꾸러미다.”
(…) 젤딘은 “한 사람의 경험, 한 시대의 지식만으로는 하나의 인생이 가진 의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고 보고, 다른 시대,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의 삶과 그들의 고민을 늘어놓음으로써 오늘날 지구상에 사는 사람들이 혼란스러워하는 문제들에 관해 새로운 답을 찾고자 했다. 그는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이들 뿐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남긴 고민의 흔적들에 주목하며 그 속에서 자아, 일, 인간관계, 섹스, 나이 듦의 고민부터 예술, 종교, 정치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나와 세계를 구성하는 중대한 문제들에 관한 통찰을 길어 올린다.
<인생의 발견>은 다소 진부한 제목이고, 무겁고 추상적인 주제의 책이다. 그럼에도 결코 지루하지 않다. 전혀 상상하지 못한 방법의 통섭을 그가 보여주기 때문이다. 국경을 초월하고 세기를 뛰어넘는 역사 속 위인들과의 연결로 새로운 시각으로 역사를 재해석한다. 조금 다른 차원에서 바라본 세상의 흐름이 신선한 자극이 되어 소용돌이를 만든다. 그가 던지는 28가지의 진지한 질문과 고민들이 내게도 진지하게 다가온 느낌이다.
가장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은 경험과 기억에 대해 서술한 부분이다. 이 부분은 역사를 바라보는 그의 시각과도 일맥상통한다. 인류 전반의 축적된 기억들이 역사라면 풍부한 과거의 기억은 풍요로운 미래와도 통할 것이다.
“기억은 과거의 것만이 아니고 미래를 구축하기 위한 구성요소다. 기억의 폭이 좁을수록 미래를 폭넓고 독창적으로 구상할 가능성도 줄어든다. 기억을 먹여 살리는 방법은 몸을 먹여 살리는 방법만큼 중요하다. 개인의 경험은 부족한 식단이지만 남들에게 습득한, 사실상 살아 있거나 죽은 모든 인류에게서 습득한 간접기억으로 보완할 수 있다. 기억이 빈약하면 이전에 가본 곳 말고는 앞으로 어디로 갈지를 상상할 수 없다.”
70억 인류를 뮤즈로 삼으라는 시어도어 젤딘. 이 책은 세상이 더 좋은 곳이 될 수 있으리라는 역사가로서의 믿음과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갈 수많은 후예들에게 더 나은 삶의 좌표를 제시하려는 노철학자의 열정의 산물이다.
“나는 모든 젊은이들에게 젤딘의 책을 권한다. 그의 책은 냉소 대신 가능성과 열정으로 가득하다.” 알랭 드 보통의 추천사를 담으며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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