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한국의 길

수피령 넘어 다목리

정진숙 2017. 7. 14. 08:31

그 해 겨울은 유난히도 눈이 많이 왔다.

강원도 화천군 상서면 다목리

아들이 있는 다목리로 마지막 면회 가던 날

밤사이 함박눈이 내려 소복히 쌓여있었다.

강원도 화천에서 군복무하던 두 해째였다.

이른 봄인 3월 하순에도 때아닌 폭설이 내렸으니

하늘도 무심하단 생각마저 들었다.

 

출발하기 전 걱정되었는지 아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길이 나쁘니까 오지말라는 내용의 전화였다.

기다리는 걸 잘 알기에 조심해서 갈 테니 염려마라며 안심시켰다.

눈길을 안전하게 가자는 생각으로

넓은 철원을 통해 가기로 정하고 길을 나섰다.

 

춘설이 내린 국도를 달려가는 길은

일동, 이동을 지날 때만 해도 편안하고 좋았다.

잠시 후 김화를 지나 육단리로 접어들자 길이 험해지기 시작했다.

가파른 광덕고개를 피해 좀 편히 가려고 택한 코스인데

더 험한 고개를 만난 것이다.

 

차량 한 대 지나 다니지 않는 외진 고갯길

을씨년스런 고개를 넘고 넘어 마지막으로 780고지 수피령을 넘었다.

철원군과 화천군을 나누는 경계에 있는 고갯길이다.

수피령을 넘어 다목리까지 가는 내내 마음 심란했다.

겨울빛이 가시지 않은 들판을 지나고 험한 고개를 넘으며

가슴 먹먹했던 생각이 난다.

일동, 이동, 신수리, 와수리, 육단리, 사창리..

지나는 곳곳이 군 주둔지였다.

불과 수십 년 전 그곳은 목숨을 걸고 뺏고 지키던 치열한 전장이었다.

그 길위에 스며있을 피맺힌 한과 절규들

첩첩산중 골짜기 마다 포성 가득하던 그런 날들이 믿기지 않았다.

 

군복무 중이던 아들 생각에

길목마다 보이는 군 시설물들이 예사롭지 않게 눈에 밟히던 길이었다.

몇 해 전 다목리로 가던 그날이 이젠 옛 이야기가 되었다.

하나뿐인 아들이 제대한 지도 벌써 5년 째다.

아들 둔 이땅의 엄마들이 가슴 졸이며 하루하루 애태우는 시간

가지 않을 것 같던 더딘 시간도 지나고 나니 추억이 된다.

 

그때 보았던 산과 계곡들을 한 번 더 찾고 싶었다.

때마침 화천 두류산 일정이 있어 그때를 떠올리며 산행을 벼르고 있었다.

공교롭게 다른 일과 겹쳐 못가고 만다.

함께하진 못해도 마음으로나마 그 길을 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