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 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 간 창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 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스물 아홉 해를 살다간 시인 기형도
오늘은 요절한 그의 기일이다.
엄마 생각,
어둡고 참담한 다른 시들에 비해
이 시에선
왠지 따뜻한 냄새가 난다.
시어 하나하나가 이야기하는
서글픔과는 다르게
그 시절, 유년의 윗목이
아슴하니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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