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생 호주니

1화. 워킹맘의 뒤늦은 육아일기

정진숙 2018. 4. 10. 13:58



이 글은 워킹 맘의 뒤늦은 육아일기다. 스물아홉 살 된 아들 90년생 호주니에 대한, 엄마의 손길이 가장 필요했던 성장의 시기에 함께하지 못했던 미안함을 담은 일종의 반성문이다. 또한 가족이란 이름으로 살아온 아들의 나이만큼의 시간을 되돌아보는 회고록이기도 하다.


호주니는 하나뿐인 나의 외동아들이다. 스물아홉 살 봄에 결혼해서 이듬 해 서른 살의 여름에 만난 첫 아이자 유일한 아이. 삼복더위 장마 중 밤을 새워 13시간의 진통 끝에 힘겹게 안은 천금 같은 아들이다. 아이가 세상에 오던 날 친정엄마와 남편이 함께 밤을 새웠다. 비 오듯 쏟아진 땀에 퉁퉁 부은 얼굴로 아이를 만났다. 내가 아픈 것보다 새로 태어날 생명이 더 걱정스러웠던 그 긴 밤의 막막함이 잊혀 지지 않는다.


아침 8시 15분, 아이는 무사히 첫 울음을 터트렸다. 너무도 조용했던 울음소리. 뽀얀 얼굴에 자그마한 몸. 예쁜 아들을 품에 안으며 마음 가득히 차오르던 벅찬 감정을 뭐라 말해야 좋을까. 세상 모든 것에 감사드린 순간이었다. 이 귀한 생명이 우리를 찾아왔음이 무엇보다 감사했다.


아이는 순하게 잘 자랐다. 밤낮을 바꿔 조용하게 우는 것 말고는 큰 어려움 없이 잘 자라주었다. 어떨 땐 귀 기울여 숨소리를 확인해야 할 정도로 온순한 아기였다. 백일이 지나고 돌이 다가올 무렵까지 방안을 누비며 온갖 저지레를 해도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울고 웃고 칭얼대는 게 전부인 아무 걱정도 모르고 무럭무럭 자라는 아이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시간이었다.


아이 키우는 일은 즐거움과 동시에 고됨도 함께하는 일이다. 두어 달 동안 어린 생명을 지켜보며 같이 숨 쉬는 나날이 은근히 고되기도 했다. 몸은 쉬이 회복되지 않은 상태라 항상 피곤했고 아기가 행여 탈이 날까 노심초사하는 초보엄마의 긴장감 때문에 내내 힘들었던 것 같다.
어느 휴일 하루, 잠든 아이만 남기고 근처 저수지로 산책을 나갔다. 여름 끝자락 바람 선선한 언덕길을 남편과 둘이서 걸으며 오랜만에 휴식을 맛보던 오후였다. 잠시의 여유를 즐기는 사이 날이 갑자기 흐려졌다. 가까운 하늘에 먹장구름이 드리우며 금방이라도 폭우가 쏟아질 듯 보였다. 베란다 창문도 열어 논 상태라 급한 맘에 집을 향해 마구 달리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강한 바람을 동반한 소나기가 쏟아졌다. 천둥과 번개가 내리치며 순식간에 을씨년스레 변한 날씨. 혼비백산 당도한 집에선 아이가 온 동네 떠나갈 듯이 숨넘어가게 울고 있었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얼른 아이를 안고 어르고 달래느라 식은땀이 흘렀다. 얼마나 놀랐을까. 배고프면 작은 울음소리로 존재감을 알리던 조용한 아이가 바람소리에 깨어나 이리 큰 소리로 울기까지 얼마나 불안했을지. 잠깐 동안이지만 아이에겐 공포의 시간이었으리라 생각하니 말할 수 없이 미안했다.


아이의 탄생과 함께 시작된 내 생애 처음 겪는 모든 일들. 건강하고 무탈하게 잘 키울 수 있을까, 육아는 낯설고 두렵기만 했다.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기울일 따름 좌충우돌 부딪히며 해결하는 수밖에 없었다. 궁금한 것들은 짬짬이 책을 통해 배웠다. 부족한 면은 조카들 자라는 과정을 지켜본 남편의 도움으로 채워갔다.


쩔쩔매는 사이 신기하게 잘 자라는 아이. 왕초보엄마의 실수투성이 육아에도 우리 부부의 아이는 첫 돌을 잘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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