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의견을 존중해 다니던 유치원을 그만두기로 했다. 본인이 극구 싫다는 걸 강요하는 건 아무런 이득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당장 아이를 돌봐 줄 사람이 필요하단 문제가 생겼다. 큰 시누이께 도움을 청하는 수밖에 없었다. 큰 시누이가 평촌으로 집을 옮기며 비슷한 시기에 우리도 산본으로 이사한 상태였다. 출근 길에 아들을 맡기고 퇴근 길에 데려오는 생활을 몇 해동안 이어갔다.
주택에서 아파트 15층으로 이사하며 아이가 제일 걱정스러웠다. 바깥에 나가 놀기를 좋아하는 아들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내리다가 집을 못 찾을까봐 겁이 났다. 한 번은 혼자 놀이터에 다녀오겠다며 엘리베이터를 태워달란다. 올라올 땐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더니 어른들 한테 15층을 눌러달라고 부탁하면 된다는 것이다. 집을 못 찾는 불상사는 없겠다 싶어 조금 안심이 되었다.
이사 오기 전 두 돌이 갓 지난 추석 무렵이다. 하마터면 아들을 잃어버릴 뻔한 아찔한 일이 있었다. 명절 전날까지 근무하느라 차례 음식을 한 집에 사는 손 위 막내 시누이가 장만하셨다. 분주하게 일하다가 점심 때가 되어도 호주니가 안 들어온다 싶어 근처 놀이터로 아이를 데리러 가셨단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아이가 보이질 않았다. 덜컥 겁이 나 큰 시누이와 둘째 시누이까지 합세해 샅샅이 찾아보았지만 저녁이 다 되도록 찾질 못했다. 하는 수 없이 인근 파출소에 미아 신고를 접수했다. 잠시 후 경찰관 한 분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동을 집에 보호하고 있다는 신고가 한 건 들어왔는데 혹시 모르니 같이 가보자 하더란다.
시누이 두 분은 부랴부랴 경찰차를 얻어 타고 멀지 않은 그곳으로 달려가셨다. 신고하신 분은 목회자라며 8차선 경수대로를 혼자 건너던 꼬맹이를 발견하곤 얼른 차를 세워 태웠단다. 그때 광경을 떠올리면 지금도 아찔하다. 이사간 큰 시누이댁은 이전 살던 곳에서 경수대로 건너편에 있었다. 지하도로 건너야 되는 길을 아들은 고모네를 갈 양으로 무턱대고 도로를 무단횡단한 모양이다. 차들이 줄을 잇고 달리는 그 길에서 아들을 구해주신 그분이 얼마나 고맙던지. 호주니 또래 아이가 있는 분이었다. 집에 가보았더니 그댁 아이와 잘 놀고 있더라는 웃지 못할 이야기다.
그 모든 상황을 퇴근해서야 듣게 되었다. 내가 상심할까봐 알리지 못했다고 하셨다.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 기막힌 일을 왜 전화로 알려주지 않았냐고 시누이들의 깊은 속도 모르고 원망했다. 아들을 찾았으니 망정이지 어쩔 뻔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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