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생 호주니

6화. 세 살배기 블랙 컨슈머

정진숙 2018. 5. 5. 13:01

세상에 태어나 겨우 삼 년을 산 아이에게 참으로 다양한 일이 있었던 한 해다. 아들에겐 큰 고모인 맏시누이가 아이를 돌보고 계셨다. 어느 날 놀이터에 가겠다는 호주니를 따라나섰다가 식겁할 일이 또 생겼다. 종종 걸음으로 신나게 그네를 향해 뛰기 시작한 아이가 갑자기 눈앞에서 사라졌다는 것이다. 덜컥 겁이 나서 달려가 보니 아들이 바닥에 쓰러져 꼼짝도 않더란다. 정신없이 아일 일으켜 앉히니 아무 일 아니라는 듯 벌떡 일어났단다. 그네를 보는 순간 너무나 신이 나서 마구 달려가다가 그네 끝부분이 정수리를 스치며 제 풀에 놀라 쓰러진 것이다. 가벼운 찰과상으로 끝났지만 키가 조금만 더 컸더라면 큰 일 치를 뻔했다. 뭘 모르는 천방지축의 나이였으니 마음 쓰이는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아이 하나를 잘 기르기 위해선 온 마을의 힘이 필요하단 말이 실감나던 시기였다.

 

한 번은 세 식구가 잠실에 있는 놀이공원으로 놀러갔다. 실내 빙상장 옆에서 스케이트 타는 걸 구경하다가 호주니가 서점을 발견했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아들은 한참을 둘러보다가 커다란 시계가 그려진 그림책 한 권을 사겠다고 말했다. 집에 책 많은데 그냥 보기만 하라니까 사고싶다는 것이다.

결국 책을 사서는 앉은 자리에서 읽기 시작했다. 얼마 간 조용히 책장을 넘기더니 갑자기 돈으로 바꿔오라는 것이다. 다 읽어서 이제 필요가 없다며. 이미 읽었으면 돈으로 바꿀 수 없다고 얘기했다. 아이는 이 책이 너무 비싸다며 굳이 바꾸라고 고집을 부렸다. 가격이 삼천 구백원이었다. 환불해달라기도 미안한 일이라 다른 걸로 교환하는 게 어떠냐 해도 막무가내다. 하는 수없이 그럼 네가 가서 서점 아저씨께 말씀드려 보라고 말했다. 설마 그럴까 싶어 한 말인데 아이가 서점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서점 주인장께 민망해서 등지고 앉아 아이가 어찌하고 오나 기다렸다. 한참을 지나 작은 두 손에 백원짜리 동전을 가득 들고 왔다. 책을 반납하고 돈을 받아온 것도 놀라웠지만 동전 서른 아홉 개가 사실은 더 놀라웠다. 아이 말로는 아저씨가 엄마가 시켰냐고 묻기에 제가 필요 없어서 돈으로 바꾸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황당한 꼬마 블랙 컨슈머. 조막만한 꼬맹이가 얼마나 맹랑해보였으면 동전 서른 아홉 개로 환불을 해주셨을까. 그 분 마음을 이해할 것도 같았다.

 

어린 나이에도 호주니는 희한하게 계산 속이 밝았다. 동네 구멍가게에서 군것질을 할 때도 꼬박꼬박 거스름돈을 잘 챙겼다. 누굴 닮은 건지 손에 쥔 돈은 집에 올 때까지 절대 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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