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이름은 나타샤였다.
여리 여리하게 큰 키에 하얀 얼굴의 금발미녀. 많아봐야 이십 대 후반이거나 삼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나타샤는 시베리아 횡단열차 9호 칸의 차장이다. 나흘 간 머물게 될 4인실 쿠페로 열차표를 검표하러 온 그녀는 이름을 말하며 살포시 웃었다. 갑자기 정겹게 느껴지던 게 참 신기했다. 우리의 영희나 순희, 숙이나 옥이처럼 러시아 여인들의 평범한 이름은 나타샤, 소냐, 안나이다. 말 걸기 부담스러울 정도로 미인인 그녀가 내 이름은 나타샤라 말하는 순간 마음의 거리는 사라져버렸다.
곱디고운 그녀가 새하얀 손으로 하는 업무란 거친 허드레 일이다. 블라디보스토크를 출발해 종착역인 모스크바에 도착할 때까지 일주일 간 열차 안의 모든 잡무를 다른 한 명의 차장과 하루씩 교대로 처리해야 한다. 열차 한 칸 예닐곱 개의 쿠페와 복도를 청소하는 일이며 침구 교체, 사모바르 데우기와 화장실 물 관리, 쓰레기 버리기 등등. 게다가 정차 역에 열차가 길게 설 때면 꽁꽁 언 열차바퀴의 얼음을 깨는 작업까지 종일토록 차장이 해야 할 일은 산더미였다.
블라디에서 이르쿠츠크까지 나흘 간 횡단열차를 타는 동안 그녀의 예쁜 모습을 보는 건 즐거움이었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미소 띤 얼굴을 대할 땐 저절로 정감이 갔고 힘든 작업을 할 때면 괜히 짠했다. 바스켓에 물을 담아 청소를 할 때 무심코 본 분홍 고무장갑은 왜 그리 또 안쓰럽던지. 한쪽 손은 뒤집어서 재활용한 흰색 고무장갑을 끼고 있었다. 먹고 살기 어려운 건 그 나라 국민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비약이 지나친 건지 모르겠지만 거대 공화국 러시아의 민모습을 단적으로 보는 듯했다. 어여쁜 나타샤가 궂은일을 하는 묘한 대비가 그들이 살아가는 현재를 말하는 것처럼 보였으니.
공산체제에서 벗어난 지 불과 이십 년. 격변하는 시대를 견뎌내기가 누군들 힘들지 않을까. 그 힘겨운 시간을 얼른 벗어나 러시아의 수많은 나타샤, 소냐, 안나들이 조금이라도 행복한 날을 하루 빨리 맞이하기를 그녀를 보며 나도 모르게 바랐던 것 같다.
예쁜 나타샤와 함께 사진이라도 한 장 찍을 걸, 이제야 아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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