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한국의 길

신라 천년의 길을 걷다, 경주

정진숙 2021. 9. 17. 13:38

1
프랑스와즈 사강을 좋아하는 소녀가 있었다. 니체를 아느냐고 묻는 소녀도 있었다. 사강의 '슬픔이여 안녕'과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었던 그 아이들은 무척 조숙한 소녀였다. 눈만 멀뚱멀뚱 아무런 대꾸도 못했던 나는 조금은 늦된 애송이였고.

그 아이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이 되어 살아갈까. 아마도 엄마, 아줌마, 더러는 할머니가 되어 나처럼 살지 않을까.

귀밑 삼센티 단발머리 여고 시절에 다녀온 경주는 하얗게 표백된 추억의 도시다. 검정색 교복에 빳빳하게 풀먹인 흰 칼라를 달고 가슴 설레며 수학여행 가던 날. 첫 여행의 기대로 잠 못들던 밤이 떠오른다. 새벽녘 깜빡 잠 들다 눈뜬 시각은 열차 출발시간 전 도착하기에 빠듯했다. 손꼽아 기다리던 여행을 가지 못할까봐 울며불며 호들갑스레 당도한 용산역에서 막 출발하려던 열차를 간신히 탔던 그 아슬함. 무사히 경주행 기차에 오를 수 있었다.

내 또래에겐 통과의례와도 같았던 한번쯤은 갔을 법한 신라의 수도 경주. 대릉원, 천마총, 첨성대, 안압지, 불국사... 천년을 견뎌온 고도의 유적들는 내게 스쳐간 시간들이 무색하게 여전히 그 자리에 고스란하다. 사라진 건 슬픈 나의 시간들 뿐.

대릉원 고분 안에 누워 잠든 신라의 왕들에게도 웃고 울던, 즐겁고 슬펐던 날들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시간 앞에선 그 모든 게 무용한 듯 보인다. 찬란했던 천년의 영화도 지나고 나면 무상한 것. 제행무상, 세상 만사에 변하지 않음이 없음을 곱씹으며 신라 천년의 옛 거리 황남동에서 신라의 밤을 걸었다. 백년 고택 소설재의 툇마루에 앉아 해거름 녘 기와담장 너머의 일몰과 초여름밤 달큰한 공기를 함께 느껴본다.

2
신라의 밤에 달은 끝내 뜨지 않았다. 사라진 서라벌, 고도의 잔영들만 옛 성터를 맴돌고 있었다.

동궁과 월지를 나와 월정교로 가는 길에 여름 밤 개구리 울음소리가 요란하다. 저 모퉁이를 돌면 월정교가 과연 있을까. 밤 9시, 인적 드문 어둠 속에서 길을 걸으며 불빛 찬란한 교각을 만나기란 도무지 요원한 듯 느껴졌다. 적막한 저 너머로, 어딘지 모를 곳을 향해 걱정 반 기대 반으로 경주국립박물관 앞을 지나쳤다.

희미하게 마을의 윤곽이 드러나자 춘양교지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눈에 띈다. 여기서 어디로 가야하나. 때마침 갈짓자 걸음의 마을 촌로 한 분이 멀찌감치 걸어가신다. 한톤 업 된 목소리로 물었다. 죄송하지만 월정교 가는 길이 어느 쪽이예요. 훠이훠이 두어 번의 헛손질 끝에 돌아온 알콜기 묻은 대답은, 그쪽 끝으로 쭉 가요. 촌로의 길 안내에 힘 입어 잠시 후 월정교의 숨 막히는 자태를 마주했다.

깜깜한 어둠 끝에서 갑작스레 나타난 신기루. 믿기지 않을 만큼 찬연한 빛의 무리로 잠든 마을 너머에서 아득히 빛나는 황금빛 불야성은, 비현실의 신기루처럼 약간은 느닷없어 보였다.

그 화려함이 낯설어서일까. 상상의 공간이던, 이미 사라진 옛 고도의 재현에 뭔지 모를 두려움이 설핏 스쳤던 것 같다. 짧은 순간의 그 느낌이 낯선 그곳을 얼른 벗어나고 싶게 만들었다. 멀리 구조대처럼 달려오는 택시를 발견하곤 힘껏 뛰어간 찰나 우리가 예약한 차예요, 하며 나타난 사람들. 아, 이건 환상일 거야, 라며 나도 모르게 고개를 흔들었다.

신라의 후예들은 사라진 왕국의 영화를 가공으로라도 되살리고픈 욕망이 있었던 건가. 월정교를 재현해내는데 510억이란 엄청난 액수의 돈이 쓰였단다. 전문가들은 고증에 의한 복원이 아니라 마치 세트장 같은 재현이라고 볼멘소리를 했다는 후문도 있다. 차라리 상상의 몫으로 남겨두면 어땠을지.

경주 최부자집 고택이 있는 교촌마을을 지나 반월성, 첨성대, 대릉원의 야경 속을 걸어 숙소 소설재로 돌아왔다. 천년 영화의 찬란함 위에 새천년의 미망이 혼재된 타임 슬립의 고도 경주. 과거와 현재가 낯설게 뒤섞인 신라의 밤을 걷다.

2019. 6.
1일차: 신경주역-황리단길-첨성대-대릉원-동궁과 월지 야경-소설재

2일차: 소설재-경애왕릉, 삼릉숲-경주 남산-보문단지-신경주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