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꽃샘추위가 유난스런 봄밤이다. 지난 주 내내 따뜻했던 일기에 들떠 성급하게 고궁으로의 봄나들이를 나서기로 했다. 야경 나들이라 설렘으로 한 주를 보냈건만 포근하던 봄 날씨가 갑자기 이렇게 싸늘해지다니. 짙은 암청색 밤하늘 아래 덕수궁을 거닌다. 고궁의 밤을 걷는 건 처음이다. 한낮의 풍경과는 다른, 조금은 적막한 느낌마저 든다.
서울에 뿌리 내리고 사는 이들은 덕수궁에 대한 추억 한 두 가지 있지 않을까. 사월이나 시월쯤의 어느 화창한 날, 볕 좋은 곳에 앉아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짓던 기억이 내게도 있다. 덕수궁은 학창시절 사생대회나 백일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소였다. 조금 더 자라선 데이트하기 좋은 곳으로, 또는 일하는 오후 휴식이 필요할 때 나와서 거닐던 곳으로, 옛 기억 어딘 가엔 청춘시절의 풋풋한 추억 몇 남아있다.
덕수궁에 들어서노라면 현재와 단절된 어떤 경계를 넘어서는 것 같은 착각이 일곤 한다. 이곳에선 신기하게도 도시의 온갖 소음이 사라지며, 담장 밖 모든 게 저만치 유리되어지는 것처럼 아스라해진다. 예전엔 혼자서도 가끔씩 들르곤 했다. 벚꽃 만발한 봄날이나 국전이 열리는 가을날. 이 곳에서 온전히 나에 몰입할 수 있었던 건 대한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느껴지던 이 곳과 저 곳의 단절감 덕분이었다. 문턱을 넘어서며 느끼던 나를 옥죄이는 것들과의 짧은 결별이지만 잠시나마 마음 편안하고 좋았다.
대한문을 지나 중화전 앞에 섰다. 오른편 돌담 너머로 부드러운 주황빛 조명을 받으며 정관헌이 어둠 속에 선명하게 도드라진다. 서양식 정자인 정관헌은 침전인 함녕전 뒤편에 있다. 고종은 이곳에서 차를 마시며 음악듣기를 즐겼다고 한다. 황제의 휴식 공간이라기엔 너무 소박하다.
덕수궁은 광해군에 와서야 경운궁이라 명하며 궁의 지위를 얻은 월산대군의 사저였다. 세조의 큰 아들 장이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나자 궁을 나서는 큰 며느리를 안타까이 여긴 세조는 수빈 한씨가 거처할 곳을 지어준다. 수빈은 둘째 아들 자산군이 보위에 오르며 궁으로 들어가자 첫째아들 월산대군에게 이 집을 물려준다. 수빈의 둘째 아들은 성종이다. 아들이 왕이 되자 인수대비로 책해진 수빈 한씨는 성종의 계비 제헌왕후 윤씨의 폐비 사건으로 연산군의 원망을 사게 된다. 결국 연산군에게 죽임을 당하는 비운의 여인이 되었다.
구 한말 대한제국을 선포하며 황궁으로 격상 된 덕수궁의 마지막 주인은 고종황제였다. 기울어가던 나라의 황제 고종은 이 비극의 궁에서 어떤 날들을 보냈을까. 대한제국이던 그 옛날 이 주변은 또 어땠을까. 도시의 불빛으로 둘러싸인 지금의 대한민국과는 천양지차의 풍경이었을 것이다. 백년 남짓한 시간을 사이에 두고 너무도 엄청난 역사가 덕수궁의 담장 안과 밖을 스쳐 지나갔다. 이젠 더는 기막힌 일들이 반복되지 않기만을 바랄뿐이다.
2
흐린 불빛을 따라 석조전으로 향한다. 봄밤의 전람회가 열리고 있었다. 석조전 서관에서 미술전시회를 관람했다. 일주일 중에 야간개장은 두 번이라는데 생각지 못한 선물이다. 호젓하게 한밤의 미술관을 거니는 기쁨을 누린다. 우리가 잃어버린 천재화가 변월룡의 삶과 예술을 소개하는 작품전이 열리고 있었다. 북은 버렸고 남은 몰랐던 천재화가 변월룡. 분단의 역사에서 우리가 잃은 예술가는 시인과 소설가만이 아니었다.
고려인 화가 변월룡은 러시아에서 재능을 인정받은 화가다. 구소련의 수많은 명사들이 그가 그린 초상화의 주인공이었다. 닥터지바고의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초상을 보게 될 줄이야. 북한 화단의 기초를 세운 그는 5,60년대 북한의 풍경과 북한 명사의 초상화도 다수 남겼다. 1916년 연해주에서 태어나 1990년 레닌그라드에서 사망하기까지 그의 조국에 대한 그리움은 작품 속에 그대로 담겨있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초상>
<금강산>
<최승희 연작>
국립현대미술관 바르토메우 마리 관장은 “역사의 사각지대에 있던 변월룡의 디아스포라적 삶과 예술은 한국 근대미술의 다층적 측면을 드러낸다”며 “이번 전시는 냉전종식 후 한반도에 여전히 존재하는 철의 장막 때문에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변월룡이라는 작가를 소개하는데 있다”고 말했다. 작품 전시는 5월 8일까지이다.
며칠 전 우연히 본 기사에서 화가를 처음 알게 되었는데 작품을 직접 만나는 행운도 얻었다. 아쉽게도 도록이 아직 준비되지 않아 구입하지 못하고 나왔다. 봄이 다 가기 전 한 번 더 찾아야겠다.
<말년의 변월룡>
3
싸늘한 봄밤의 덕수궁 나들이. 잠시나마 이 궁궐에 머물다간 이들을 돌아보았다. 한 많은 여인 수빈 한씨의 집으로 지어져 비운의 황제 고종의 황궁으로 궁궐의 명운을 다할 때까지. 덕수궁의 지난 시간은 아프고 얼룩진 역사로 가득하다. 그러나 지금은 문화와 여유로움을 누리는 열린 공간으로 변모했다. 덕수궁의 이른 봄밤을 거니는 나처럼, 누구라도 고궁의 낭만을 누릴 수 있는 쉼의 장소가 되었다. 상전벽해라고, 비록 지난 날의 왕궁이 도시인들의 쉼터로 바뀌었다 하더라도 이 궁궐의 슬픈 과거를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기억해야 할 아픔은 기억할 일이다.